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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과잉생산 '내권(內卷)' 에 갇힌 중국, 경고 나선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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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없는 과잉경쟁 '내권' 질타
전기차 위기 내몬 무한 가격 경쟁
기술력 부족에 지방 AI센터 방치

[월드+]과잉생산 '내권(內卷)' 에 갇힌 중국, 경고 나선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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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시진핑 주석은 중앙도시공작회의에서 지방정부의 인공지능과 전기차에 대한 과도한 투자에 대해 직설적인 경고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방향으로 투자가 반복되면서 비생산적인 과도한 경쟁을 우려하는 그의 발언은 중국 경제 구조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내권(內卷, involution)'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원래 인류학 용어였던 이 개념은 현재 중국에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 즉 생산적이지 못한 과도한 경쟁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생산자 물가는 2022년 9월 이후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공장 출고가는 33개월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은 과잉생산에 따른 부작용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과잉생산은 비용을 낮춤으로써 수요를 확대하거나 가격 경쟁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퇴출당하면서 해소된다. 하지만 중국의 소비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출을 꺼리고 저축에 몰두하면서 수요 확대는 요원한 상황이다.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뒷받침을 받은 기업들은 퇴출 대신 더 많은 대출과 보조금을 통해 시장에 계속 남아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전기차 시장이다. 2025년 5월 23일,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 BYD가 일부 모델에 대해 30% 이상의 파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중국자동차제조업협회는 이례적으로 "특정 자동차 제조업체가 대폭적인 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많은 회사가 이를 따라 했다"며 "새로운 가격 전쟁 공포"를 경고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가격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노무라 증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중국 내 평균 자동차 소매가격은 약 19% 하락하여 현재 16만 5천 위안 수준에 이르렀다. GDP 디플레이터가 9분기 연속 하락한 상황에서 전기차 산업의 가격 전쟁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과잉 생산능력에 기반한 가격 전쟁에서 명확한 승자를 찾기는 어렵다. 시장 점유율 30%에 가까운 BYD조차 4월 19%에서 5월 14%로 성장률이 둔화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전기차 스타트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서, 샤오펑은 1분기에 약 9천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고,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는 나오는 9억 4천 960만 달러라는 막대한 손실을 보고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모두가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AI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신장위구르 자치지역이나 내몽골 등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의 지방 정부가 AI 사용 붐을 활용하고자 데이터 센터 건설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러한 프로젝트 중 다수가 기술적 노하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새로 건설된 데이터 센터에서 칩이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는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산업 전략은 중앙정부가 목표를 제시하면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체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규모 보조금을 통해 새로운 시장 참여자들이 대거 등장하도록 하고 시장에서 이들의 생산물이 소화될 수 있도록 구매 보조금 등을 통한 시장 형성 노력을 병행했다. 업체 간의 경쟁을 통해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 수요가 늘어나고 업체들은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업체를 보호해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러운 인수합병을 통해 몇 개의 대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도록 유도한다. 태양광 패널을 비롯해 5G 네트워크, 배터리, 전기차 등은 이런 과정을 통해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과잉 생산능력이 계속 누적된다는 것이다.


1년 전 시진핑 주석의 프랑스 방문 당시 중국에 과잉 생산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시 주석의 발언은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시 주석은 부채 규모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미래 세대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발언은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정치적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시발점이 시 주석에게 있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시 주석은 투자와 생산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더 고도화된 첨단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을 요구해왔다. 14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은 그동안 세계 공장 노릇을 해 오면서 생산역량은 커졌지만 소비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전문가들에게 내수 시장의 확대는 합리적이며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시 주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복지를 강화하고 다양한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도록 해야 했다. 버블이 붕괴된 부동산 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과감한 수준의 조치들을 시행해야 했지만, 정책의 범위와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중국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과잉생산능력 축소에 나선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날 대규모 실업 사태를 중국은 두려워한다. 미국으로부터의 관세를 비롯한 다양한 압력에 직면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회 내부적으로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은 중국 지도부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민이 거듭되고 있다. 중국이 1990년대 일본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반복할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할 것이다.


중국의 과잉생산과 저가 수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내권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중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조건적인 낮춰보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파악하고 변화의 방향을 읽어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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