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서울 종로경찰서 여청계 APO 김노아 경장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나 최전방에서 편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지난 17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만난 김노아 경장(34)은 APO(Anti-abuse Police Officer:학대예방경찰관)가 된 계기로 아동보호 전문 기관에서 일했던 6년의 세월을 꼽았다. 특히 당시 만난 아동 방임 가정을 회상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쓰레기 집을 매일같이 찾아가 아버지와 아들을 만났다. 모든 유관기관이 아들과 아버지의 분리를 권했지만, 그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봐온 김 경장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와 아들의 끈끈한 유대감을 끊지 않고, 직접적 원인이었던 환경을 깨끗하게 바꿔 해결한 것. 김 경장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아버지가 작은 노트에 30페이지 가까운 편지를 써주고, 아들은 작곡, 작사한 곡을 선물로 줬다"며 "대상자가 처한 상황을 공감해 같이 고민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반복되지 않도록…초기개입에 힘써
김 경장은 바람대로 단순히 사건이 아닌 사람을 지키는 APO가 돼 3개월째 근무 중이다. 김 경장은 종로서 여청계에서 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 학대 등 관계성 범죄의 피해자 보호 업무를 맡고 있다.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건 김 경장이다. 그는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나다 보니 해당 가정에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잘 알 수 있다"며 "조치나 개입 방향을 주도적으로 공유해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경장이 관리하는 가정은 30개 정도로, 하루에 평균 2~3명의 피해자를 만나 상담한다. 이 중 가장 자주 접하는 범죄는 가정 폭력이다. 김 경장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지만, 술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부부간 폭력을 자주 본다"며 "가해자가 고령자, 음주자이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긴급 임시조치, 응급입원 등 조치가 복합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자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집착해 심각한 위해로 발전하거나, 폭력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아 초기개입을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 곧 APO의 핵심
사건 대상자에게 도움을 줄 때 공감 능력은 곧 무기가 된다. 김 경장은 늘 피해자의 눈을 맞추며 '저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용기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말을 첫마디로 건넨다. 김 경장은 "피해자와의 대화에서 70%가량은 듣는 데 집중한다"며 "경찰이라는 직책에 긴장하거나 경계하는 피해자가 많아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 안심시키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사건 대상자가 마음을 여는 속도에 맞춰 다가가기도 한다. 김 경장은 "노인학대로 반복 신고가 들어왔던 가정이 있었는데, 피해자가 처음에는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며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시 연락드리는 날짜, 상담 날짜 등 '작은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도 사건 대상자의 신뢰를 얻는 방법의 하나"라고 했다.
피해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김 경장은 맞춤형 지원에 힘쓴다. 상담, 의료, 법률, 경제적 지원 등 개별 상황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아온 아들이 어머니를 때려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왔던 사건을 떠올렸다. 김 경장은 "가정폭력으로 접수됐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정신질환을 평생에 걸쳐 앓아 돌봐온 아들을 향해 모든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며 "'아이와 함께 살며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어머니와 함께 고민하며 회복을 도우려 했다"고 말했다.
"단순 사건이 아닌 그 뒤편 사람을 보는 일"
사건을 해결하거나 범인을 검거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은 아니지만, 김 경장의 보이지 않는 노력은 피해자의 마음을 바꾼다. 김 경장은 APO의 업무를 '단순 사건만이 아니라 그 뒤편 사람을 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삶이 허무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경찰의 보호조치를 받으며 밤에 편하게 잠을 잔다'는 피해자의 말을 들었을 때 APO로서 보람을 느꼈다"며 "APO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라고 전했다.
APO 업무를 이어가며 사건 대상자의 하루에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것이 김 경장의 바람이다. 그는 "평범한 직장, 아이, 가족을 꾸리길 꿈꾸는 사람을 묵묵히 지켜주는 경찰로 기억되고 싶다"며 "누군가의 마지막 안전망이 되어주고, 상처받은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는 마음을 이어나가겠다"고 말을 마쳤다.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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