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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책무구조도, '색출도구'에 그쳐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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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통제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인지, 감독기관의 필요 때문에 도입된 제도인지 모르겠다." 최근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책무구조도' 관련 설문조사에서 한 실무자가 익명으로 털어놓은 말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책무구조도는 임원 별로 내부통제 책무 범위를 분배해 금융사고에 대해 문책을 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횡령·배임 등 금융사고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도 궤를 같이하는 만큼 향후 한층 강도 높은 집행이 예상된다.

금융투자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복되는 사고를 줄이고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 실무 차원에서 확인되는 각종 우려를 단순히 제도 도입 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반발'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한 설명회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처벌할 임원이 정확하게 지목될 수 없으면 잘못된 설계"라고 책무구조도를 규정했다. 또한 과거 5년간 제재사례를 시뮬레이션해 각 금융사의 책무 임원, 즉 제재 대상이 특정되는지 여부로 제도를 점검하겠다고도 밝혔다.


실무진의 우려가 커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자칫 '책임자 지목 도구'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상당히 위험하다. 예측 불가능한 모든 사고에 대해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는 구조가 굳어진다면 경영진은 내부통제를 이행하기보다는 '법적 방어'와 '책임 회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금융투자업의 경우 업무의 연결성이 크고, 복수의 부서가 동시에 관여해 검증·검토하는 프로세스가 많은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책무구조도가 향하는 '책무 명확화'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부서 간 책임 분절, 협업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이는 '초 단위 싸움'을 하는 증권사 조직 전체의 역동성을 해치는 결과까지도 우려된다. 여기에 당장 비용 부담, 인력 부족 등이 겹치며 '형식적' 대응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책무구조도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산업계에서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결과는 어떠했나. 모든 위험 요인을 100% 통제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과도한 형사처벌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경영진은 사고 예방이 아닌 소극적·방어적 경영으로 돌아섰다. 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는 줄지 않았다. 일각에선 사고 은폐, 보고 지연, 형식적 대응 등이 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초 취지와 달리 '면책' 준비에 초점이 맞춰지는 역효과로 귀결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규모일수록 기업 측 부담이 특히 커졌다.


선례를 지켜본 금융당국은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내부통제는 징계와 처벌이 아닌, 신뢰와 책임 위에서 작동한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실질적인 면책과 보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한 당국은 책무구조도를 '무소불위의 창'이 아닌 업계와 함께 가는 나침반으로 다루겠다는 메시지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내부통제 강화가 현재 우리 금융투자 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임은 매우 명확하다. 그 연계 선상에서 책무구조도도 이제 막 발을 내디뎠다.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발 빠른 제도 보완을 통해 책무구조도가 단순한 책임자 색출 도구가 아닌, 금융사 통제력을 키우기 위한 '신뢰의 설계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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