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중국 추격 속 제조업 위기
생존 위한 韓·日 협력론 부상
데이터 공유 통한 AI 제조 플랫폼 구축 필요성
최태원 "일본과 손잡고 제조 AI 데이터 협력 필요"
한국은 AI 속도, 일본은 정밀 데이터
OCI의 한일 합작 사례처럼 위기 속에서 산업 생존을 위한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국 재계는 일본과의 '데이터 기반 제조 협력'을 새로운 전략 카드로 꺼내들었다. 세계 공급망 재편과 미·중 경쟁 격화, 특히 중국의 빠른 기술 추격 속에서 양국의 디지털 전환 역량과 정밀 제조 노하우를 결합해 대응하자는 현실적 접근이다.
한일 산업 협력 목소리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강조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48회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지금 제조업 전환을 고민하지 않으면 10년 뒤 위기가 닥칠 수 있다"며 "AI로 우리가 다시 제조업을 일으키지 못하면 상당 부분이 퇴출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여태까지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너무 많다"고도 지적했다.
제조업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경쟁 환경의 급격한 변화다. 중국의 기술력 향상과 가격 경쟁력,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로 한국 제조업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특히 석유화학 등 일부 산업은 이미 중동, 인도, 중국과의 격차가 커져 경쟁 자체가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려면 AI를 통한 제조 혁신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게 일본 산업계와의 협력이다. 재계 등에 따르면 AI의 핵심인 데이터 측면에서 한국은 양은 갖췄지만 질과 정제 수준에서 한계가 있는 반면, 일본은 정밀 데이터와 노하우는 있으나 디지털화가 더딘 상황이다. 최 회장은 이런 상호 보완성을 근거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방식의 산업 협력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국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AI 제조 플랫폼을 구축하는 전략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산업 구조 차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 코트라는 지난해 '일본 디지털 전환 전략과 새로운 진출 기회' 보고서에서 "일본은 고정밀 생산설비와 장기 운용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디지털 전환이 더딘 구조"라며 "한국은 스타트업 기반의 AI 도입이 빠르므로 상호 보완적 협력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조립 중심 시스템 제조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가격·속도 중심 전략만으로는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본은 정밀기계와 소재, 부품 등 고도화된 장수 설비를 갖췄으나 디지털 전환 속도가 더뎌 생산성 정체와 고령화 문제가 병존하고 있다. 한국의 '속도와 양', 일본의 '정밀성과 질'을 결합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질 좋은 데이터는 이제 제조업 생존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고도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 '양과 질을 갖춘 데이터'라는 데 산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데이터 확보 경쟁은 이미 국가 간 경쟁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전 발간한 '레볼루션 코리아'에서 "AI 고도화의 핵심은 양과 질을 갖춘 데이터"라며 "질 좋은 데이터는 새로운 형태의 자원이고 곧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 간에도 데이터 확보 경쟁이 이미 본격화됐다"고 강조했다.
한일 간 협력 필요성에 대해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이 먼저 일본에 손을 내미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 규제 이후 일본 기업들도 손실을 겪었고, 한국 내 공동 투자나 기술이전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액화천연가스(LNG), 방위산업 등 전략 분야에서 기업 간 공동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이 실효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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