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찬성 55% 반영
정신질환 경우 조력 사망 불가
야당선 '취약계층 생명 경시' 우려
스위스를 필두로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유럽 국가가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슬로베니아가 동유럽 국가 중 최초로 조력 사망(assisted dying)을 법제화했다.
슬로베니아 국회는 18일(현지시간) 찬성 50표, 반대 34표, 기권 3표로 조력 사망 허용 법안을 최종 통과시켰다고 AP, 유로뉴스 등이 보도했다.
법안은 두 명의 독립된 의사 승인과 환자의 철회 권리를 보장하며, 모든 치료 옵션이 소진된 이후에만 조력 사망이 가능하다.
또한, 법안은 의식이 있는 말기 환자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며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의료진의 도움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은 제외됐다.
법 시행은 몇 주 내로 이뤄질 예정이다. 환자는 두 명의 독립된 의사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철회할 권리도 부여된다. 실제 약물 투여 직전까지 환자가 의사를 번복할 수 있도록 절차가 설계됐다.
이번 법안 통과는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55%가 찬성한 결과를 반영한 조치다. 슬로베니아 집권 여당 자유운동 테레자 노박 의원은 "조력 사망 선택은 의료의 패배가 아니라 환자의 마지막 권리"라고 밝혔다. 반면 보수 성향의 야당 슬로베니아 민주당(SDS)은 "사회적 약자의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판했다.
슬로베니아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유럽에서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조력 사망은 스위스(1942년 합법화)를 시작으로 네덜란드·벨기에(2002년), 룩셈부르크(2009년), 스페인(2021년), 오스트리아(2022년), 포르투갈(2023년) 등 서유럽에서 법제화됐고, 호주·캐나다·미국 일부 주에서도 허용되고 있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는 하원을 통과해 상원 심의 단계에 있으며, 특히 스위스는 외국인 대상 '자살 관광'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력 사망은 연명치료 중단과 달리 환자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의사가 약물을 제공하는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국제사회에서 윤리적 논쟁이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꼽힌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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