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인도학자 강성용 서울대 교수
[김대식·김혜연의 AHA] 인도학자 강성용 교수
인공지능도 카르마를 가질 수 있을까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서구와 동양, 인간과 자연, 예술과 기술. 우리는 각종 '경계' 위에 세계를 세우고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지금, 인공지능(AI)과 탈경계 기술의 발전 속에서 기존 질서는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인문학은 기술 앞에서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경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을 맡고 있는 인도학자 강성용 교수의 단언이다. 그에게 인문학은 사라지는 학문이 아니라 '근본을 재정의하는 기술'이다. 인도 철학과 고전을 연구하는 그는 최근 현대 남아시아 사회, 종교, 그리고 기술의 흐름까지 아우르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불교 수행론과 정신의학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인간 내면의 회복과 사유의 재구성을 위한 실천적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사유는 유튜브 삼프로TV에서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대담 영상으로도 대중에게 알려졌다. 철학의 언어로 오늘의 세계를 해석하는 힘이 주목받았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AI 시대에 '인간다움'과 '전통'이 만나는 접점을 중심으로, 인도 철학이 던지는 본질적 질문들을 함께 나누었다. 대표 저서로는 '위대한 인도'(문학동네, 2024),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불광출판사, 2024) 등이 있다.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원래는 인도 고전학을 전공한 인도학자입니다. 그래서 세부 전공은 인도 철학과 인도 고전학 분야인데 서울대학교에서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를 맡으면서 현대 인도와 남아시아에 대한 연구 비중이 늘었습니다.
최근에는 네브래스카대학 메디컬 센터에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를 전공하시는 황순조 선생님과 함께 인도 쉬라마나 수행론을 전제로 하는 세계관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새롭게 접근할 때 현대 정신의학과 관련해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여러 수행이나 치료 기법들이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는 왜 유독 인도 출신 CEO가 많을까요.
▲첫째는 인도의 국가적 역설 때문입니다. 독립 이후 소비에트 모델을 따르며 인프라 구축에 실패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개인 단위에서도 가능한 IT 산업에 집중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습니다. 인도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 전체의 역량을 키우는 대신 천재를 골라내는 시험 시스템으로 작동했고, 이를 통해 IIT(인도공과대학)라는 초정예 교육기관이 사회적으로 부상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정적인 건, 이민자의 절박함입니다. 인도 출신의 많은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자신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다고 느낍니다. 퇴로가 없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를 줄이면서 오히려 더 과감한 결단을 유도하고, 주류 사회로 진출하고자 하는 강력한 노력의 동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전통적 계급사회의 상층민들에게 주어지는 추상적 사고에 대한 여유와 허용적 가정교육이 열어 주는 자유로운 질문의 태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인도는 현대 국가인가요, 아니면 종교사회인가요.
▲'인도'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인도는 수십 개의 언어, 종족, 종교가 얽힌 다층 구조의 사회이고, 민족국가적 정체성을 근대에 억지로 구성한 케이스입니다. 실제로 인구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씨족이나 카스트 단위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전통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반면, 도시에서는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자본이 움직이고 있죠. 그 간극은 인도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벵갈루루와 같은 곳에서 초현대적 시설이 있는 IT-BPM(정보기술·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 산업 캠퍼스와 동시에 그밖에 하수도마저 없는 도시가 공존하는 모순적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종교는 이런 다층 구조를 통합하는 하나의 질서 체계입니다. 종교가 규정하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 일상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인도의 종교적 정체성은 쉽게 약화되지 않습니다. '힌두 국가'를 만들려는 최근 정치 흐름을 통해 종교적 정체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정치화되고 있어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처럼 내수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이기에 인도라는 국가를 상대하는 것은 항상 어렵습니다.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청난 액수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외환보유고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복잡성을 드러내는 나라인 점도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인도인은 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걸까요.
▲인도에서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한국은 규율과 통제 위주의 훈육 문화지만, 인도는 가족 내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에게는 문제가 있을 상황이라고 보이기 전까지는 어른들이 개입하지 않는 식이죠. 이런 허용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행동 혹은 개인적인 선호를 따르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거기에 상위 카스트의 사회적 기득권을 지닌 집안에서 성장한다면, 그 아이는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는 감각을 일찍 내면화하게 되죠.
이와 같은 태도는 실리콘밸리의 문화와도 잘 맞습니다. 거기서는 '배려하고 조심하는 사람'보다,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 더 유능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즉, 인도인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단지 문화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교육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기준으로는 일상에서의 배려와 예절이 부족하다고 보이게 되는 것과 동시에 이것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됩니다.
-AI 시대에도 인도는 종교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생물학적 인간이 이루는 사회는 인간이 생물학적 단위라는 사실을 놓치면 이야기될 수가 없습니다. 보태어 AI 기술의 사회적 침투 여부를 떠나, 한국에서는 종교가 개인의 세계관으로 축소되며 사실상 탈종교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종교는 신앙이라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종교가 식사, 결혼, 일상적 행위 하나하나를 규정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며, 청소년기 이전에 형성된 감각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결국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개인이 가진 종교는 세대가 교체되기 전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AI 시대에도 인도의 종교성은 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인도인들도 결혼은 인도식 중매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술 발전은 자본주의 질서가 일상 안으로 침투하는 속도를 가속화하고, 인도의 전통을 일상 속에서 흔들고 있기도 합니다. 기술혁명으로 인해 일상의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의 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인데, 국가적인 발전 전략의 한 축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신분증(아다르)과 연계된 휴대전화 단말기를 활용한 금융 거래와 예산집행, 음식과 조리의 사회적 맥락을 회피할 수 있게 해 주는 배달 플랫폼, 교육 인프라의 부족을 채워주는 온라인 교육 스타트업은 일상을 지배하는 전통의 압력을 우회하는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죠.
저는 이 변화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도 전통을 해체할 가능성을 열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과도기이며, 기술을 활용한 해결과 전통의 압력이 동시에 공존하는 매우 이례적인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에도 생각보다 강력한 충격이 될 것으로 보이며 한 번은 판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봅니다. 언젠가 정치적 의사결정자들이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할 상황이 올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인도 전통이 기술혁신의 관철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인간이 가진 특성이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경제는 바뀌어도 정치에 있어 생물학적 단위마다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기에 정치적 의사결정과 사회적 현실 사이의 긴장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마지막 남는 질문은 개인에게 던져질 것입니다. "당신은 만족하나요?" 이런 질문이 주어질 때 그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또 하나의 질문이자 숙제가 던져질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인도 고전은 인간에게 어떤 사유를 제안할 수 있을까요.
▲AI 기술이 우리 삶 곳곳에 들어오며 인간의 고유성을 위협하는 시대에, 오히려 인도 고전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주체성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는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역사가 인류사에서 만들어낸 가장 높은 성취는, 개별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인간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도 온전하게 인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수천 년간 개발해온 인도 전통의 수행론에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개념은 연결망을 끊거나 단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로 훈련되는 일입니다. 이 전통은 단지 명상법에 그치지 않고, 감정이 인지보다 먼저 혹은 최소한 동시에 개입된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각과 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내적 리듬과 테크닉을 제시합니다. 예컨대 '세 번 숨쉬기' 같은 단순한 수행도 뇌 과학적으로 검토해보면 뇌의 잠재적 시계에 연동된 호흡활동의 근본적 리듬을 흔들어 자극에 대한 반응이 무의식적으로 쏠려 가는 일을 멈추게 한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정보처리 중심의 AI가 접근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내적 작동 구조를 일깨우는 데 의미가 큽니다.
-인공지능도 '카르마'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인공지능이 카르마를 가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카르마는 인간이 상상하고 경험해 온 감정의 축적과는 전혀 다른 경로와 구조를 지닐 겁니다. 카르마는 단순한 '업보'가 아닙니다. 인도의 전통에서 카르마란 의도된 행위가 남긴 흔적이며, 그 존재의 경향성을 결정짓는 인식의 기반입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반복학습과 선택을 통해 특정한 성향을 내면화하고, 그것에 따라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는 카르마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인간과는 다른 방식의 카르마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정서가 인지를 규정하며, 그 감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죠. 이는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구축된 것이라면, 반대로 AI는 다른 시스템으로 새로운 상스카라(행위의 흔적)를 형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고유한 '경향성'을 갖는 존재이자 동시에 생물학적인 단위가 아닌 존재가 나타날 수 있다는 대목이 인간에 대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규정을 뒤흔드는 새로운 강력한 도전이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시대, 인도 철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무엇을 잊고 있나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인간은 물질적으로는 생물학적 단위이며 동시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단위라는 사실이 갖는 규정성을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의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의 관점이 지워진 순간에 맞게 될 문제들을 간과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3인칭이 아닌 1인칭 시점의 경험과 인식과 설명이 정보가치 면에서 더 저급하다는 선입견을 떠나서, 나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를 대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보뿐만이 아닌 정서가 뒤섞여 작동하는 인지적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사회적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1인칭 주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측면에서 가장 많은 고민과 해답을 누적해 온 전통이 인도 철학 전통이고, 이제 그 가치가 확인되어 가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나보다 많이 가진 AI도 나의 느낌을 대신 느낄 수 없습니다. '나'라는 것이 환상이지만 그 환상이 가진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인도 철학은 가르쳐 왔습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김혜연 안무가 여니스트 대표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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