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빚 없애준다고 문제해결 안돼…구조개혁 꼭 필요"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에 나랏돈 수십조원 투입예정
현금지원뿐 아니라 창업역량 강화·진입제한·고용연장 등 보조정책 병행해야
2차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 후 자영업 대거 진입 우려도 해소해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번화가에서 작은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박성희씨(가명)는 진지하게 폐업을 고민 중이다.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전문점을 개업했지만 직장 다닐 때 벌던 돈의 절반 정도밖에 가져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와 대출 이자, 직원 월급, 공과금, 세금 등을 내고 나면 본인 손에 들어오는 돈이 생각보다 너무 조금이라는 생각이다. 박씨는 "직장을 다니던 때보다 더 길게 일하지만 버는 돈은 적다"며 "근처에 경쟁 업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가게를 정리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취약 자영업자의 빚을 대대적으로 탕감해주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자영업 구조개혁도 반드시 함께 진행돼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하게 빚을 없애주는 금융 지원에서 끝내면 안 되고 자영업 과잉 진입 방지, 창업역량 강화 및 경영 교육, 직장 퇴직자에 대한 계속 고용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크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에 수십조원 투입 예정
정부가 올해 마련한 31조7914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상당 부분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살리기에 투입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정책은 12조1709억원에 달하는 소비쿠폰이다. 소비를 진작해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한 소비쿠폰의 경우 이번 달 안에 전 국민에게 1차 지급을 끝내고 2개월 이내에 하위 90% 국민에게 10만원을 추가로 지급해 침체된 자영업 경기를 개선할 계획이다.
어려운 자영업자를 포함한 취약 계층의 채무 16조원을 탕감해주는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배드뱅크) 역시 최대한 속도를 낸다. 다음 달까지 금융권과 정부가 총 8000억원의 자금을 출자해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오는 10월부터 소각 대상 채권 매입에 나설 계획이다. 취약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는 새출발기금 확대안도 오는 9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새출발기금은 정부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기 위해 마련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가 발발했던 2020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사업을 영위한 취약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정부는 2차 추경 예산 중 7000억원을 투입해 새출발기금의 지원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렇게 대대적인 소상공인 살리기에 나선 것은 어느 때보다 소상공인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과 법인을 포함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100만8282명에 달했다. 전년보다 2만1795명 증가하며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폐업 자영업자 중 소매·음식점업 비중이 45%에 달하는 등 내수 업종을 중심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많았다. 폐업 사유별로는 '사업부진'이 전체의 50%를 넘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병욱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고금리 장기화 등에 기인한 비용 부담이 누적된 상태에서 내수 회복의 지연 등이 겹치면서 경영 여건이 악화했고, 과도하게 누적된 채무로 인한 상환 부담의 증가와 준비 부족으로 인해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평가했다.
심각한 내수 부진으로 빚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도 많이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88%로 2015년 1분기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빚을 많이 가진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2.24%로 2013년 2분기 13.54%를 기록한 이후 최고치다. 한은 관계자는 "서비스업 경기 부진 등으로 소득 회복이 더딘 점은 자영업 가구의 채무 상환능력 개선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금지원뿐 아니라 고용연장·창업역량 강화·과잉 진입 방지 등 보조 정책 병행해야 성공 가능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금전 지원을 해주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근본적인 자영업 침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종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경쟁력이 약화한 업종이 과잉 진입하지 않도록 유연한 퇴출 방안을 마련하는 '이원화된 정책 설계'가 업종 전반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경쟁력 약화 업종에 대한 지속 모니터링과 필요시 전직·재창업 지원 프로그램 연결, 불필요한 자영업 과잉 진입 방지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노동시장 안전망을 강화해 퇴출 자영업자에 대한 실업급여나 재교육 기회 제공, 관련 복지제도 연계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영업자들이 신속하게 폐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세무·행정 절차 간소화, 재정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영업 대책은 기존의 보편적 생존 지원에서 벗어나 업종별, 경쟁력별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경쟁력이 약화한 업종에는 유연한 퇴출을 지원해 시장 전반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고령층의 자영업 진입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수다. 우리나라 단일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 954만명)가 지난해부터 향후 10년 동안 순차적으로 법정 은퇴 연령(60세)에 도달하게 된다. 한은은 은퇴자를 위한 상용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 중 상당수는 생계유지 등을 위해 자 영업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추정에 따르면 2015년 142만명 수준이었던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32년 248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고령 자영업자들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창업 준비가 더 부족하고 운수창고·숙박음식·도소매 업종에 몰려 있어 수익성이 더 낮고 부채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고령층이 안정적인 임금 일자리에서 오랜 기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호 한은 조사국 차장은 "은퇴 후 자영업으로 몰리는 현상으로 인해 거시경제 리스크가 높아지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노사정이 협력해 임금체계 개편을 동반한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중심으로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을 논의해 볼 수 있다"며 "고령층에 맞는 상용 일자리 수요가 창출될 수 있도록 서비스업 대형화를 추진하거나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기업과 고령 은퇴자 간 매칭을 강화하는 등의 보완적인 대응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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