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룰' 포함한 상법 개정안 국무회의 공포
재계 "형사리스크 해소할 대안 담기지 않아"
與, 집중투표제·자사주 소각 등 추가 입법
기업들은 주주성향 분석 등 자구책 준비 중
개정된 상법이 공포되면서 재계에 무력감이 확산하고 있다.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포함한 추가 입법을 예고한 반면, 기업들이 요구하는 '배임죄 완화' 등은 입법 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방어 수단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경영권 방어 대응 시나리오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집단들은 현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입법 추진을 저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자체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나섰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정치권과 재계가 뭔가 주고받을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라며 "최고재무책임자(CFO) 조직 차원에서 공격적인 펀드 등 주주 성향 분석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기업 내부에선 주요 주주의 의결권 행사 이력과 공개 발언, 지분 보유 목적 등을 분석해 집중투표제 도입 시 실제 표 대결에 나설 가능성까지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들은 정기 주주총회 전 이사 후보군 구성을 조정하거나 특정 안건에 대한 찬반 지형을 사전에 가늠해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작업도 함께 검토 중이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공포된 이번 상법 개정안엔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조항,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의 독립이사 전환 등이 담겼다.
보완책이 빠진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개정으로 인수·합병(M&A), 해외 투자 등 합리적 경영 판단에 제동이 걸릴 수 있고 행동주의펀드로부터 고배당 요구를 받거나 경영권까지 공격받을 거란 문제도 제기된다.
여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후속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계가 우려해온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더 강력한 2차 개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3차 개정안으로 여겨지는 '자사주 소각' 등은 9월 정기국회 처리가 목표다.
재계 관계자는 "충분한 우려를 표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법안) 처리되고 있다"며 "집중투표제 의무화까지 이뤄지면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영판단 원칙 도입' 등 재계 요구를 반영하는 움직임은 더디다. 경영판단 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의 의무를 다하면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법·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상법상 특별배임죄 조항을 전면 삭제하되, 형법에는 '경영판단 원칙'을 명확히 규정했다.
이 밖에도 한 주당 의결권을 복수 부여하는 '차등 의결권'이나 시가보다 싸게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한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여당의 입법 움직임은 아직 없다.
재계 관계자는 "후속 입법을 막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각자 생존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치권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손을 놓은 분위기"라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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