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책무구조도]③전문가들이 보는 실효성 강화 방안
정성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금융사고마다 반드시 책임지는 임원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만 제도를 운용한다면, 책무구조도는 일종의 '데스노트'가 된다. '책무를 다한' 임원에게는 과감한 감면을 인정해 주되, 회사 자체에 대한 제재는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금융규제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성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올해부터 시행된 책무구조도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감독당국이 해당 제도를 책임을 묻기 위한 제재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최근 아시아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개별적인 사고에 어느 특정한 개인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에만 입각하면, 책무구조도가 기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도입 초기에는 설령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고 규모에 따라 기계적으로 제재할 것이 아니라, 임원이 나름의 노력을 다한 흔적이 있다면 이를 '상당한 주의'를 다한 것으로 적극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지배구조법 제35조의2 제2항의 적용 선례를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2항은 금융회사 사고 발생 시 해당 임원이 내부통제 등 관리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면 금융당국이 제재를 감면할 수 있도록 고려 요인을 규정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인 현재 현장에서 혼선과 우려가 있다는 점 역시 인정했다. 정 변호사 역시 책무구조도 작성 업무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꼈다는 설명이다. 실질적인 관리 감독을 임원 밑의 직원이 수행하며 임원의 개입이 어려운 경우, 공동대표이사 체제처럼 동일 책무에 다수 임원이 있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 변호사는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금융회사의 특성에 맞는 내부통제제도가 갖춰져 있는지에 대한 점검, 재편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협회 등을 통해 표준안을 만들고 여기에 회사 이름만 바꿔서 기재하는 책무구조도가 각 회사의 실정에 맞는 책무구조도인지는 의구심이 든다"며 "일정 기간 책무구조도를 운용해 보면서, 자기 실정에 맞는 내부통제 구조를 기획해 책무구조도를 재편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내부통제 기준 마련 및 준수 의무를 규정한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35조의2 제1항과 제2항이 적용될 수 있는 차이가 구별돼야 한다면서 "'사고는 발생했으나, 내부통제는 모범적인 사례'가 빨리 발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개인에 대한 제재(형사제재 포함)에서 기업에 대한 제재(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제재의 원칙적 형태가 변모돼야 한다"며 책무를 다한 임원에 대한 과감한 감면이 제도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를 위해서는 '사법절차에 준하는 절차적 정당성이 강화된 행정제재' 도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우리보다 앞서 책무구조도를 도입한 영국이 원칙중심 규제를 적용하는 반면, 한국은 규정중심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경영진 문책에 이르는 과정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짚었다. 정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아직 명확한 선례는 없으나, 사고 발생 시 책무구조도에 따른 책임자를 판별하고 '제대로 이행했는가'가 중요한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로 인해 실무 법조계에서는 대표이사가 책무구조도에 따른 책임을 절대로 면하는 방법은 매일 내부통제회의를 열기만 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책무구조도가 제대로 됐느냐를 따지지 않고, 이를 이행했느냐만 따지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제도 정착을 위해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금융당국의 '확실한 시그널'을 꼽았다. 정 변호사는 "지금은 제도의 도입 시기라는 특성상 심리적 저항이 매우 큰 시기"라며 "감독당국은 책무구조도가 경영진 결과책임을 묻기 위한 도구라는 시장의 막연한 불안감을 제거해줄 수 있도록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사 역시 실제 이행 가능한 관리의무 이행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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