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산하 폴리텍大, 갑질·폭언 징계 5년내 최다
올 상반기 징계요청서 포함 19건
성희롱·언어폭력·임용개입 정황
경영진·고용부 관리·감독 도마위
"내가 이사장이면 이 학교 아주 XX 다 폐기야."
지난해 3월11일 오후 한국폴리텍대학 한 캠퍼스 기숙사 게스트룸. 당시 행정처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직원들에게 고성과 욕설을 쏟아내며 세탁기를 발로 차고 손으로 내려쳤다. 세탁기 등 시설물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내가 이렇게 소리 질러야 하느냐"며 "오늘 이거 세팅 안 되면 퇴근 안 시킨다"고 으름장을 놨다.

한국폴리텍대학의 올해 상반기 징계 의결서에 따르면 피해 직원이 업무가 많다며 부서 이동을 요청하자 "속도를 내려면 밥을 먹지 말고 일을 해라. 일이 밀렸으면 토요일, 일요일 나와서 일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게티이미지
고용노동부 산하 기술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불리는 한국폴리텍대학에서 최근 직원들의 폭언과 갑질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단순 욕설을 넘어 물리적 위협, 성희롱 발언, 심지어 수습직원의 정규 임용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한국폴리텍대학의 올해 상반기 기준 임직원 징계 건수는 19건으로 이미 최근 5년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10건, 2분기 4건의 징계가 확정됐고, 또 현재 추가로 감사실 감사 결과 징계를 요청한 5건이 있다. 징계 건수는 2021년 9건, 2022년 10건, 2023년 12건, 지난해 14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중징계에 해당하는 '해임'은 지난해 0건에서 올 상반기 3건 발생했다.
아시아경제가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국폴리텍대학의 올해 상반기 징계 의결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일반직 2급으로 근무하던 A씨는 향응수수 및 갑질,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행위 등으로 학교로부터 해임됐다. 그는 지난해 8월26일 직원에게 업무 지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욕설과 폭언했다. 피해 직원은 업무가 많다며 부서 이동을 요청하자 A씨는 "속도를 내려면 밥을 먹지 말고 일을 해라. 일이 밀렸으면 토요일,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하라"고 막말했다.
폭언은 출장 도중에도 이어졌다. 앞서 같은 해 4월 29일, A씨는 동부산캠퍼스로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식사 중 동승한 한 직원이 주정차 위반 관련 전화 통화가 길어지자 "이거 XX 완전히, (나를) X으로 아네"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통화 전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씨의 갑질은 직원에 대한 신체 접촉으로까지 번졌다. 같은 해 4월18일 A씨는 행정처 회의 중 한 직원이 의견을 말하자, 이후 소각장 근처로 불러내 가슴과 배를 손가락으로 여러 차례 찔렀다. 그는 '내 의견을 한번 들어봐라, 부탁이다'는 의미의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학 고충심의위원회는 이 사건을 성희롱으로 판단했다. A씨는 "가슴에 손을 올려보고 생각해 보자는 차원에서 취한 행동이었다"고 거듭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출근길 직원에게 "담배를 사다 달라"고 심부름도 시켰다. 그는 "형-동생 관계로 서로 담배를 사다 주며 근무한 것"이라고 했다.
업무 관련 부적절한 지시도 드러났다. A씨는 같은 해 7월쯤 계약담당자에게 약 3500만원 상당의 기숙사 비품(서랍장, 의자, 블라인드)을 특정 업체와 수의로 계약하도록 지시했다. 기숙사 비품 구매 요구가 교학처로부터 정식 접수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통상 절차를 무시하고, 정상적인 구매 요구 단계 없이 계약까지 진행하도록 지시한 셈이다.
또 다른 캠퍼스에서 운영직으로 근무하던 B씨와 C씨는 수년간 동료 직원과 후배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폭언과 협박 등을 일삼아온 사실이 드러나 해임됐다. 이들은 지난해 9월 5일 캠퍼스 생활관 지하 보일러실에서 수습 직원 D씨에게 인수인계하던 중 그가 반말한다며 태도 불량을 문제 삼았다. C씨는 "양손을 붙이고 45도 각도로 정중히 인사하라. 수습평가에서 탈락시킬 수 있다"고 협박했다.
같은 달 30일에도 이들은 부서 책임자를 찾아가 D씨의 말투를 문제 삼으며 "이런 사람이 정규직이 시켜도 되겠냐"며 압박했다. 수습 직원의 정규직 전환은 B씨의 권한 밖이었다. D씨가 같은 해 11월 정규직으로 임용되자 이들은 사무실을 찾아가 "XX 육갑하네"라며 D씨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폭언했다. B씨는 평소 D 씨의 말투를 흉내 내며 조롱한 후 몸싸움을 벌이다가 급기야 인근 휴게공간에서 실랑이를 지켜보던 재학생들 앞에서도 "학생들 오라 해! XX! 니가 인간이가! 개XXX"라고 욕설했다.
이들의 폭언 대상은 D씨만이 아니었다. 앞서 지난해 10월18일 C씨는 시간외근무 결재가 나지 않자 해당 사무실 부서장인 E씨를 찾아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듣기 싫고 하기 싫으면 뭐 하려고 앉아 있냐, 옷 벗고 집에 가서 애(나) 봐라"며 고성을 질렀다. 이에 B씨도 "그렇게 하기 싫으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며 동조했다.
일각에선 폴리텍대학이 경영진의 관리·감독 미흡이 기강 해이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정국 혼란의 틈 속에서 공공기관 조직의 전반적인 관리, 감독 소홀에 따른 윤리 의식의 누수 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어떤 이유든 내부에서 불미스러운 문제가 계속 발생한 것은 대학 경영진과 해당 기관의 감독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폴리텍대학 측은 올 상반기 늘어난 징계 건이 공직기강 확립에 따른 자체 감사를 강화한 영향이라고 해명했다. 대학 관계자는 "(징계 처분) 숫자가 전년 대비 증가해 집계된 현상을 단순히 기관에 문제가 있다는 상관관계로 해석하기보단 조직 기강 확립을 위해 선제적 대응 결과로 보고 있다"며 "재발방지 대책으로 강화된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기관장 중심으로 조직문화 변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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