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사흘 전, 기상청 예산 삭감 법안 통과
트럼프 재난 기관 해체 계획에 '우려 확산'
지난 4일 미국 텍사스주를 강타한 급작스러운 홍수는 12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희생자 중 상당수가 어린이들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 아프다. 샌안토니오 외곽 커 카운티(Kerr County)에서는 과달루페 강의 수위가 45분 만에 26피트나 상승하며 이른바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재난' 수준에 도달했다. 아무도 이 정도 규모의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고 이는 텍사스주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정부의 책임론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 기관 축소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정부는 올해 초 국가기상청(NWS)에서 600여명의 직원을 해고했으며 2026년 예산안에서는 국가해양대기청(NOAA)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기상 연구소들을 폐쇄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텍사스 홍수가 발생하기 불과 사흘 전인 7월1일 트럼프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상원에서 51대 50이라는 단 한 표 차로 통과됐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주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 역시 이 법안을 지지했다. 해당 법안은 2026년부터 국가기상청과 해양대기청의 예산을 6.7% 삭감하는 법안으로, 홍수 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상 연구 프로그램들이 예산 삭감 대상에 대거 포함돼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인력 부족이 예보 대응의 조율을 어렵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예일대학교 환경커뮤니케이션센터는 텍사스 사례에서 예산 삭감과 홍수 피해 간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추가적인 예산 삭감은 홍수 예보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수 예보 시스템은 정확도와 신속성을 향상시켜 조기 경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다. 게다가 기상청은 현재 다수의 고위급 직원을 잃은 상태로, 기상 관련 재난의 위험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기상청과 해양대기청의 예산 삭감이 이번 홍수 피해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과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모든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들은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행정 개혁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4일 폭우가 쏟아진 미국 텍사스 중부 산악지대 힐 컨트리 지역의 과달루페강 유역. 이 강이 범람해 대규모 수해가 발생해 1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 = A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가장 큰 논란은 연방재난관리청(FEMA) 폐지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해당하는 FEMA는 트럼프 정부가 올해 허리케인 시즌 이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기관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앙 재난 대응 기관이 정권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 바 있지만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재난관리청이 해체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재난관리청은 재난 발생 시 신속한 물자 조달과 피해 주민에 대한 재정 지원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이와 함께 국가 홍수 보험 프로그램 운영, 재난 대비 훈련 제공, 각 주의 대응계획 수립 지원 등을 통해 전체 재난 대응 시스템의 개선을 도모한다. 2년 전 하와이 마우이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당시 FEMA는 생존자들의 식량, 의류, 필수 물품 등 긴급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즉시 보조금을 지급했다. 거주지를 잃은 주민들의 임시 주택 마련을 위해 거의 3억달러(약 4100억원)를 지출했고, 학교 건설 자금도 지원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재정 여력이 제한된 하와이주는 FEMA 없이 독자적으로 이런 대응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텍사스 같은 대형주들도 종종 FEMA의 도움을 받았다. 2021년 텍사스를 강타한 겨울 폭풍으로 전력망과 수도 인프라가 붕괴되었을 때 FEMA는 비상사태 선포 이후 식수, 연료, 발전기, 담요 등 필수 물자를 신속히 운송했다. 단 며칠 만에 280만달러 이상의 임시 주거 및 주택 수리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세금 낭비는 물론 지양해야 하지만 재난관리청이나 기상청 같은 필수적인 재난 대응 기관에 대한 예산 지원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수행해야 할 기본 책무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점점 빈발하는 상황에서 연방 차원의 재난관리청이 사라진다면 각 주는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재정 여력이 풍부한 주는 어느 정도 독자적 대응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재정과 인프라가 부족한 소규모 농촌 주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효율성 제고와 비용 절감은 정부 운영의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필수 기능까지 무분별하게 축소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텍사스 홍수 참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자연재해는 예고 없이 찾아오며, 이에 대한 대비와 대응 역량은 국가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기능이라는 점이다.
서보영 美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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