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23)
중국, 세계 최대 수소차 시장될 전망
트럭·특장 등 상용차 위주 수소차 보급 늘려
현대차, 광저우시와 손잡고 中 시장 공략
현지화 통한 차세대 기술 개발에 기여
턱밑까지 쫓아온 中, 수소 패권 향한 추격
지난달 26일 중국 광저우 바이윈 공항에서 차로 1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현대자동차 '에이치투(HTWO) 광저우' 공장. 수소연료전지를 생산·판매하는 법인으로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황푸구의 첨단 산업 개발 단지 내에 20만2000㎡(약 6만평) 규모로 조성됐다. 연간 6500기의 수소연료전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는 1000기 정도를 생산 중이다. 2023년 6월 준공된 최신 공장인 만큼 세련된 내부 디자인과 깔끔한 외관이 돋보였다.
우선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EGA(Electricity Generating Assembly)' 생산 공정부터 둘러봤다. EGA는 수소연료전지의 셀이라 할 수 있는 얇은 막이다. 미세한 기공이 있는 막을 통해 수소와 산소가 만나 화학반응을 이루고 전기를 만들어낸다. 이 얇은 막을 400장 정도 촘촘히 쌓으면 수소연료전지 스택이 되고, 스택을 공기 및 수소 공급 시스템, 열관리 시스템 등과 결합하면 차량에 장착할 수 있는 연료전지 시스템이 탄생한다.
이날 방문한 EGA 생산 라인은 기계를 조립하고 만드는 제조 공장이라기보다는 정밀·청정도를 중시하는 반도체 공장에 가까웠다. 공장 입장 전부터 흰색 가운을 입고 신발에 커버를 씌웠다. 높은 청정도를 유지해야 하는 셀 생산라인은 유리 벽으로 외부와 공간이 분리돼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서는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바쁘게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있었다. 문귀현 생산부 책임은 "1㎥당 먼지를 1만개 이하로 유지하는 반도체 공정 수준의 클린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 핵심 기술을 다루는 구역인 만큼 기술 유출 방지 및 보안을 위한 통제도 엄격했다. 휴대폰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것은 물론 금속 탐지기와 안면인식 시스템으로 모든 출입자를 통제했다.
또한 위험물질인 수소를 다루는 시설이기에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현대차는 제조 과정에서 수소를 활용하는 공정을 분리해 별도 건물을 지어 관리하고 있다. 수소를 활용하는 건물 내부에는 회색 방폭벽이 설치돼 있었으며 천장에 수소감지기도 눈에 띄었다. 문 책임은 "이 건물은 중국 내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안전기준에 맞춰 설계된 건물"이라고 귀띔했다.
스택 공정을 지나 활성화 및 성능 테스트 라인에 도착하자, 각 셀에 테스트용 전선을 촘촘히 붙인 연료전지가 컨베이어벨트에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라인에서는 각 셀의 활성화 정도를 검증하며 3시간여에 걸쳐 모의 주행과 검증을 한다. 저속과 고속, 무거운 짐을 실은 상태를 가정한 부하 운전, 급가속 운전 등 다양한 환경에서 셀 성능을 테스트한다.
마지막으로 시스템 부품의 최종 조립과 검수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다. 이 공장의 생산 자동화 수준은 90%가 넘지만, 모든 생산품의 최종 출고 전 검수는 숙련된 인력이 직접 하고 있다. 이때 볼트와 너트의 조임 정도까지 수치화해서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남겨둔다. 문 책임은 "나중에 AS를 할 때도 특정 제품의 바코드만 찍으면 출고 전 생산 과정과 제품 상태를 그대로 복기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왜 중국에 수소연료전지 공장을 지었나?
중국은 세계 최대의 수소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한국은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분야의 기술에서 독보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수소에너지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수소 소비량은 연간 3650만t 이상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현재는 화학공업 분야에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교통·운송, 에너지 저장 및 발전 분야에서도 널리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 말 기준 수소연료전지차량(수소차) 누적 보급 대수도 중국(2만8000대)은 한국(4만2000대)에 이은 2위다. 중앙정부 차원의 수소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5대 시범 도시 군(베이징·상하이·광둥·허베이·허난 지역)을 중심으로 상용차 위주의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수소 충전소 수를 세어봐도 중국이 가장 많다. 데이터 제공업체 H2 스테이션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에 구축된 수소 충전소는 1160개이며 그중에서 384개가 중국에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는 한국(198개), 일본(161개)보다 더 많다. 중국은 2025년까지 27개 성과 도시에서 1264개 충전소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35년까지 수소차 누적 보급 대수를 100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와 도요타 등 수소연료전지 제조사들이 세계 최대 수소 소비 시장인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수소 생태계 조성이 가장 빠르게 이뤄질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2024년 수소가 공식 에너지로 포함된 '에너지법'을 제정하고 올해부터 시행했다. 수소를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과 동일한 지위의 에너지원으로 인정하는 법체계를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산업 육성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수소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며, 글로벌 수소 산업의 표준을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수소 강자 현대차, 중국 시장 공략 전략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수소 시장에 뛰어든 현대차의 전략은 무엇일까. 현대차그룹의 중국권역 수소 전략을 총괄하는 최두하 HTWO 광저우 법인장(전무)을 현지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 전무는 HTWO 광저우의 핵심 과제를 '중국 현지화를 통한 글로벌 기술 경쟁력 강화'로 제시했다. 그는 "기술력이 올라오고 있는 중국 시스템사와 경쟁은 물론, 현지 파트너사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차세대 수소연료전지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은 성능과 내구성의 측면에선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수소연료전지와 비교하면 가격이 1.5배 이상 비싸다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차는 성능은 높이면서도 가격은 낮춘 차세대(3세대) 연료전지 시스템을 한창 개발 중이다. 현대차는 차세대 연료전지의 원가를 낮추기 위해 잠재력 있는 중국 현지 부품업체를 공급망에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지에서 물류, 운송,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수출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최 전무는 "한국에서도 신형 넥쏘 출시로 수소차 판매가 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세계 최대 수소차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이견은 없다"며 "보조금 없이도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를 선보일 수 있도록 현지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하고, 2030년 이후 본격 성장이 예상되는 수소차 시장에서 토대를 다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중국 수소 생태계에 녹아들기 위해서라도 현지 업체와의 협업은 중요하다. 초기 시장인 수소 상용차 시장은 현재로선 보조금 없이는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하다. 또한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매년 운용한 수소차의 운행 거리를 바탕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게다가 연료전지 시스템과 수소차 판매 대상이 정부 기관 또는 국유기업이라는 점에서도 이 사업은 현지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필요하다.
초기 태동 단계인 중국 수소 상용차 시장은 정부 보조금 위주로 성장하고 있다. 승용차 위주로 보급을 늘린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은 버스나 물류 트럭, 청소차, 트랙터 등 상용차에 집중하는 방향을 택했다. 시범 지역으로 지정한 베이징, 상하이, 광둥, 허베이, 허난 등 5개 권역에서 목표 보급 대수를 채우기 위한 지역 간 경쟁도 치열하다.
광둥성 광저우시를 파트너로 선택한 현대차는 광저우 지역의 물류 트럭, 버스, 청소차, 트랙터 등을 수소차로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500대 정도를 판매했으며, 누적 주행거리가 191만㎞에 달했다.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연료전지 시스템이 도입되면 선박, 항공, 철도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차는 이달 중 중국 연료전지 연구개발센터 설립을 앞두고 있으며, 이곳에서 다양한 모빌리티 응용 분야의 실증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최 전무는 "광저우시에서 우리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전담 TF를 구성하고, 부지 선정은 물론 용수·용전 등 복잡한 인허가 기간을 파격적으로 줄이는 적극 지원을 해줬다"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우리도 지역 GDP와 수소 생태계 조성에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수소 패권 향한 추격
현대차 가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 수소 상용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최근 시장 흐름을 보면 급성장하는 중국 업체들의 부상에 대한 위기감도 함께 감지된다. 60개가 넘는 중국 로컬 수소연료전지 제조사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빠르게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글로벌 수소차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56.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 업체의 판매량은 1197대로 전년 동월 대비 45% 늘었다. 글로벌 수소차 시장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56.4%에 달했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수소차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굴러다닌다는 의미다. 중국이 전기차에 이어 수소차에서도 최대 시장과 점유율 1위 업체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구성과 효율성, 일관된 품질 등의 측면에선 현대차가 분명 앞서고 있지만 60여개의 중국 수소연료전지 제조사들은 30% 이상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특히 가격에 민감한 상용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은 큰 무기가 된다. 게다가 중국 업체들의 개발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빠르다는 점에서, 현대차와 도요타 등 기존 강자들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 업체들은 2020년 국가 육성 정책에서 제시한 목표 기술 지표를 대부분 달성했으며, 주요 5개 핵심 부품의 현지화율은 85%에 육박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정책의 연속성이다. 정부가 한번 방향을 정하면 자금력과 인력, 기술력을 총동원해 장기적으로 산업을 육성한다. 컨트롤타워가 명확하기에 정책의 중복이나 혼선이 없고 각 기업과 부문 간 협업도 유기적으로 이뤄진다. 업계에선 중국이 초기 전기차 시장에서 정부 주도로 생태계를 구축했던 방식을 수소차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22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정부 차원 최초의 수소에너지 발전종합계획인 '수소에너지 산업 중장기 발전계획(2021~2035년)'을 발표했다. 2023년에는 산업 표준을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2024년에는 수소를 국가 에너지법에 포함시켜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올해는 수소에너지 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의 2단계(2026~2030년)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과 목표가 제시될 전망이다.
광저우(중국)=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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