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대형 선풍기에 의존
30분 만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
퇴근 전까지 멈출 수 없는 노동
"오늘 날씨 역대급인데 진짜 큰일이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은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의 한 물류 캠프. 헬퍼 사무실에서는 폭염을 걱정하는 말들이 새어 나왔다. 벽에는 "포도당과 물을 충분히 섭취하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혹서기 키트라는 이름의 쿨팩과 이온 음료가 신규 헬퍼들에게 제공됐다. 키트는 무더위를 막아줄 방어선이다.
기자도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안전화를 신은 뒤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카키색 조끼를 입은 관리자는 "어제도 탈수 증세로 쓰러진 분이 있었다"며 "물 꼭 많이 섭취하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전 10시 스트레칭과 안전교육이 끝나자 곧바로 배정이 이뤄졌다. 처음엔 소분 업무였지만 관리자가 이름을 부르더니 '하차'로 가라고 했다. 물품 하역 업무다.
듣던 대로 고된 일의 대명사 같았다.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는 팔레트 더미 위의 택배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쉴 새 없이 올려야 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고 무거운 쌀 포대, 흙, 음료 묶음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신선식품이 담긴 프레시백도 있었다. 팔레트를 하나 비우면 곧바로 새 팔레트가 들이닥쳐 쉴 틈이 없었다. 몸을 굽히고 들고 올리는 동작이 반복되면서 등줄기 아래로 식은땀이 흘렀다. 숨은 턱에 차올랐다.
일 시작 30분이 지나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1시간쯤 됐을 땐 팔과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서 "잠시만요"라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함께 일하던 분은 "지난해 '하차'일을 하다가 한 달 만에 10㎏ 빠졌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힘 빠진 팔로 물건을 들어 올릴 때면 팔꿈치가 덜덜 떨렸다. '이젠 못하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옆에선 누군가 "아직 4시간 남았다"는 말을 툭 던졌다. 그 한마디에 팔이 더 무거워졌다.
작업장에는 대형 선풍기와 천장 팬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에어컨은 없어 열기가 덮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아귀는 저리고, 발바닥까지 끈적끈적해졌다. 작업복 안에 고여 있던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오전 11시40분이 되자 휴식이 주어졌다. 총 5시간 근무 중 유일하게 주어진 30분이었다. 헬퍼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다. 짧은 휴식 후 헬퍼들은 다시 줄지어 작업장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인 오후 3시까지는 공식적인 휴게 시간 없이 일해야 했다. 작업 중간에 물을 마시러 갈 수는 있지만 누구도 맘먹고 쉬기는 힘들었다. 목이 말라 자리를 비워도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자리에 복귀했다. 회계사 시험을 마치고 잠깐 용돈을 벌러 왔다는 김모씨(27)는 "예전에도 알바를 했지만 이렇게 더운 날은 처음"이라며 "점심시간도 없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오후 2시55분 퇴근까지 5분이 남았지만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작업장 스피커에서 "롤테이너(RT) 세팅해 주세요"라는 관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RT는 물류센터에서 택배를 쌓는 이동식 철제 선반이다. 소분 담당자들이 분류된 상자를 RT에 옮기고, 가득 차면 트럭 앞으로 이동시킨다. 퇴근 직전까지 물량은 끊이지 않았다. 그 순간 몇몇 헬퍼들의 어깨가 처졌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찍고 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연장 근무를 하지 않는 헬퍼들이 퇴근했다. 기자도 땀에 젖은 옷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온종일 혼자서 처리한 팔레트는 14개였다. 더위에 지친 얼굴, 지끈거리는 머리, 허리와 팔엔 노동의 무게감이 남았다.
업체는 전국 물류센터에 냉방 설비를 확충 중이라고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느낀다.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이 업체의 온도 기록장에 따르면 지난 10일 여주센터 작업장은 최고 기온이 32.9도로 집계됐다. 같은 날 동탄센터는 오전 10시30분 기준 33.4도까지 치솟았다고 노조 측은 밝혔다.
택배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배송을 늦출 수 없다고 할수록 결과적으로 헬퍼들의 노동 강도는 높아진다. 소비자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편하게 주문하지만, 노동자들의 땀의 결과로 편안함을 즐기는 것이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이들의 휴식권도 그 편리함과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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