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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근대 은행노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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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금융과 연결성 기대하지만
발행 주체 다르고 규제 공백 문제
설계 시점부터 통일 기준 세워야

[논단]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근대 은행노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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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잠재 시장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다. 기존 은행, 핀테크 기업,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자체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검토하거나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발행 주체와 설계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 원화의 가치를 1:1로 고정하겠다는 점이다. 이는 블록체인상의 원화 역할을 하며 결제, 송금, 금융 서비스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디지털 자산 기반의 디파이(DeFi) 생태계와 전통 금융 간의 연결고리로 작동할 가능성에 관련 기업들 주가가 급등하는 등 기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보며 미국 근대사에서의 '자유 은행 시대(Free Banking Era, 1837~1863)'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의 중앙은행이 해체된 후, 각 주 단위로 수많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은행권을 발행했다. 표면상으로는 모두 '달러'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당연히 각 은행의 신용도나 위치, 환금 가능성에 따라 가치와 유통 가능성이 달라 혼란을 야기했다. 일종의 사설 화폐들이 난립하며 위조, 부도, 신뢰 문제 등이 겹쳐 결국 연방정부가 '국가 은행법' 제정과 함께 은행을 인가하고 통일된 국가 통화를 발행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스테이블 코인도 유사한 위험을 안고 있다. 발행 주체가 다르면 담보 방식, 상환 보장, 회계 처리, 블록체인상의 투명성 등에서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일부는 실제 원화 예치금을 100% 준비금으로 보유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국채나 기업어음 등의 자산을 기반으로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처음에는 '1코인 = 1원'이라는 단순한 인식으로 통용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특정 발행자의 코인은 더 신뢰받고, 일부는 과도한 이자 및 스테이킹 보상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거나, 더 나아가 어떤 코인은 유통이 줄거나 담보 자산 가치 하락으로 '가격이 1원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한국 시장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규제 공백이다. 현재 한국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명확한 제도적 정의나 규율이 없다. 이는 시장에 유연성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불확실성과 시스템 리스크를 키운다. 미국은 이미 여러 주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으며, 연방 차원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을 '은행 전용 발행'으로 제한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연합도 MiCA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및 유통에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고 있으며, 준비금 구성과 외부 감사까지 이미 상세히 규정한다.


이런 실정에서 시중 은행, 인터넷 은행, 대형 핀테크 기업,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각자 다른 조건과 시스템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면, 초기에는 혁신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금융소비자의 혼란과 시스템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코인을 보유한 이용자 입장에서는 현금 상환 및 가치 보증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규제당국이 사후 개입해 일괄적인 규제를 도입하려 할 경우, 이미 유통된 스테이블 코인을 회수하거나 통일된 기준으로 전환하는 데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금 관망이 아닌 '설계의 시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통일된 기준, 투명한 회계 규율, 발행자 자격 요건, 준비금 관리 기준 등을 미리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발행을 허용하거나 제한해야 한다. 또한 특정 기관의 감독 권한이나 인가제도 도입 여부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디지털 시대의 화폐를 설계하면서도, 과거 은행노트 난립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규일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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