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댐이 지어지고 침수 빈번…연평균 42일
여수로 수문 설치되면 식수원 해결 방법 찾아야
울산, 물 문제에도 역사·관광 명소 조성 계획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면서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 보고를 권고했다. 사연댐은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65년 12월 대곡천 하류 지점에 건설한 자연 월류형 댐이다. 큰비로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상류의 암각화까지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이 지어지고 6년 뒤인 1971년 12월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아래쪽에 새겨진 그림 대부분은 물에 잠긴 상태였다. 대곡천 상류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더 내려가지 못하고 반구대 바위 앞에 머물러 있었다. 쌓인 물이 바위를 조금씩 거슬러 오르다가 낮은 곳에 새겨진 암각화부터 차례로 덮고 있던 것이다.
반구대의 고래와 사슴, 호랑이 그림은 매년 몇 달씩을 물속에서 지내야 했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물이 빠져야 오염물질을 포함한 진흙을 뒤집어쓴 채 햇빛에 몸을 말릴 수 있었다. 그러나 흐르지 못하는 고인 물에선 특유의 비린내가 났고, 때로는 녹조가 번져 물빛도 탁했다.
악순환이 반복되면 암각화의 그림은 형상을 잃어간다. 쪼아진 경계선이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진다. 실제로 대곡천 맞은편 언덕 위에서도 보이던 반구대 바위의 사람 얼굴은 이제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려는 노력은 있었다. 차수벽 설치를 비롯해 생태 제방 구축, 터널 형태로 물길 변경, 카이네틱 댐(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 등이 시도됐다. 그러나 하나같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주변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로 무산됐다.
사연댐 수위를 조절해 침수를 막고 있지만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댐 만수위 표고가 해발 60m인데, 암각화가 53~57m에 자리 잡고 있다. 댐 수위가 53m만 돼도 암각화 부분이 침수되고, 57m를 넘으면 완전히 물에 잠긴다.
사연댐을 운영하는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암각화가 물에 잠긴 날은 연평균 42일이다. 다만 올해는 이달 초까지 수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암각화가 물에 잠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서다.
국가유산청과 울산시는 사연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2021년 댐 여수로에 수문을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현재 기본·실시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제반 절차를 순조롭게 밟아 내년 하반기에 착공하면 2030년께 준공할 전망이다.
관건은 수위가 낮아지는 만큼 부족해지는 식수원을 해결할 방법이다. 울산시 측은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울산은 이전보다 하루 약 4만9000t의 식수원이 부족해진다"며 "미래 수요를 생각하면 그 이상의 물을 받아와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부족분을 경북 청도군 운문댐 물을 끌어와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수량과 공급 시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이와 별개로 대구시가 안동댐 물을 공급받기로 하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운문댐 물이 울산에 공급될 가능성은 크게 점쳐졌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에서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서 섣불리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지역 간 식수 공급이 원만하게 합의돼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운문댐에서 울산까지 약 44㎞ 구간에 도수관로를 설치해야 한다. 수천억짜리 사업을 현실화하기까지 또 다른 기다림이 필요하다.
울산시는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구천의 암각화 보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최근에도 암각화 일원에 대한 종합정비계획 수립용역에 착수했다. 정비계획이 마련되면 일대를 보존 중심의 관리 체계로 전환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세계암각화센터를 건립하고, 탐방로를 조성하는 등 역사·관광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통해 국내외 학술 연구, 보존 기술 적용,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등을 도모할 것"이라며 "울산이 세계를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지로 각인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단독] "자식이 안 물려받는다는데"…이제 '남'에게도 기업 승계 가능해진다](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93/2023022008325229068_1676849573.jp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