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 1명당 어르신 16명 건강·식사 챙겨
최고기온 35도 불볕 더위에도 가정 방문
"변화되는 어르신 모습이 뿌듯함 느껴"
"폭염에 온종일 밖에 돌아다니면 쓰러질 것 같지만, 독거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기려면 쉴 순 없죠."
낮 최고기온 35도를 웃도는 11일 오후 광주 남구 월산동 쪽방촌 일대.
불볕더위 속 선애자(63) 생활지원사가 한 손에 든 양산으로 겨우 햇빛을 가린 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의 집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올해로 생활 지원사 7년 차에 접어든 선 씨는 독거노인과 고령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안부 확인, 정서 지원, 생활 교육, 가사·복지 자원 연계 등의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선 씨가 월산동 일대에 담당하는 어르신은 16명으로, 대부분 수년 동안 홀로 쪽방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 어르신에게 방문하는 시간은 20~40분 정도. 선 씨는 이날만 6명의 어르신을 만나야 하므로 쉴 새 없이 월산동 일대를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녔다.
이날 만난 신극일(77) 어르신은 선 씨가 서비스를 지원한 지 3년이 넘었다. 신 씨의 집은 선풍기 하나만 덩그러니 돌아갈 뿐 찜통과 같았다. 집에 에어컨과 TV가 있었지만, 신 씨는 전기 요금을 조금이나마 아끼기 위해 선풍기로만 여름을 버티다 보니 먼지만 쌓여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들어온 선 씨를 본 신 씨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에어컨을 켰다.
선 씨는 신 씨를 보자마자 평소 앓고 있던 지병 등 건강 상태 확인과 식사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신 씨는 노인 일자리로 생활비를 마련하지만, 대부분을 저축하면서 끼니를 거를 때도 있다는 것. 때문에 폭염 속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건강과 식사 여부 확인은 필수가 됐다.
저축이 일상인 신극일 어르신에게 선 씨는 "조만간 정부에서 소비쿠폰을 지급하니 꼭 쓰셔야 한다"고 당부했고, 음식과 생필품 등을 사겠다는 확답을 받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선애자 지원사는 "어르신들이 대부분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하시기 때문에 반찬과 이불 세탁 등 꼼꼼히 챙길 수밖에 없다"며 "광주시에서 통합돌봄 차원으로 지원하는 반찬도 폭넓게 대상자를 늘린다는 이유로 1주일에 2회에서 1회로 줄어 양이 부실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신극일 어르신 같이 이 일대 가구는 주변이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오히려 소외된 상황이다"며 "어르신이 광주천 일대를 걸으며 폭염을 견디고 있다. 경로당은 텃세가 있어 갈 수도 없고, 마음을 놓고 쉴 공간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난 원삼실(82)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매달 생활비를 쪼개 굿네이버스, 유니세프 등 5개 기관에 후원하고 있다. 원 어르신의 집도 마찬가지로 집에 에어컨은 장식과 다름이 없었고, 얼마 전 요금을 내지 않아 가스가 끊겨 가스레인지 위엔 버너가 올려져 있었다. 후덥지근한 실내 날씨에 원 씨의 주 생활 공간은 30㎝ 남짓한 집 앞 복도다. 원 씨는 "하루하루가 폭염을 이겨내기 위한 전쟁이다. 올해는 무더위가 작년보다 빨리 시작된 거 같아 더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빨리 찾아온 무더위에 선애자 지원사의 걱정도 깊어졌다. 원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를 줍는 등 환경정화 활동에 나서지만, 혹여 문제가 생길까 항상 노심초사한 마음이다. 이날도 선 씨는 "밖에 나가실 땐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게 휴대폰을 꼭 챙기시라"라며 신신당부했다.
선 씨는 "쪽방촌 일대는 나무 그늘이나 쉼터, 공중화장실이 없어 폭염에 온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며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이 간혹 우울증을 겪기도 하는데 수년간 옆에서 말벗이 돼 그들이 변화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취재본부 민찬기 기자 coldair@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