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평균 300개 상자 나르며 땀으로 범벅
택배 시작한 지 2년 만에 체중 19kg 줄어
“힘은 들어도 제 리듬대로 살 수 있어 다행”
“일요일엔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활력 충전”
11일 오전 7시 광주의 한 물류센터. 천장 선풍기가 느리게 돌았다. 아직 햇살도 강하지 않은데 실내 공기는 벌써 후끈하다. 반소매 유니폼 위로 땀이 번졌고, 바닥엔 트럭에서 쏟아낸 상자들이 빠르게 쌓였다. 기사들은 말없이 손을 놀렸다. 송장을 확인하고, 품목을 나눈 뒤 컨베이어 벨트 앞에 다시 상자를 쌓았다.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박현제(39) 씨가 자신의 구역 물량을 확인했다. 검은 모자, 회색 조끼, 팔토시 차림이다. 그는 하나하나 배송 순서를 떠올리며 짐을 차곡차곡 적재한다. "테트리스 하는 기분이에요." 잘못 놓인 박스 하나가 작업 전체를 다시 하게 만든다. "한 박스라도 틀리면 다 꺼내야 해요. 시간도 체력도 두 배로 들죠."
택배 일을 시작한 지 2년. 72kg이던 체중은 53kg까지 줄었다. 하루 평균 300개의 박스를 나른다. "오늘은 220개니까 좀 나아요." 6~7월은 비수기지만 노동 강도는 줄지 않는다. 출발이 30분 늦어지면 퇴근은 한 시간씩 밀린다. 화요일 물량(400여개)은 정오까지 상하차가 이어진다.
출근한 지 두 시간이 넘어도 그의 동작은 줄지 않았다. 트럭과 구역 사이를 오가며 수십 개의 상자를 실었다. 이때 동료 한 명이 기자에게 얼음 생수를 건넸다. "기사님들 요즘, 이 더위에 물도 잘 못 마시고 일해요. 상하차부터 배송까지 다 혼자 알아서 해야 하니까요."
오전 9시 40분, 박 씨는 트럭에 올라탔다. 첫 배송지는 광주 남구 백운동. 주택가 골목에 차를 세우고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송장을 스캔하고, 문 앞에 물건을 놓는 동작이 반복됐다. "이 동네는 이제 송장만 봐도 누군지 다 알아요." 계단을 두세 칸씩 오를 때마다 숨이 가빴다. 기자 역시 이내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제가 너무 빠른가요?" 그가 웃으며 물었다.
택배기사에게 가장 버거운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다. 옷은 땀에 젖고, 차량 내부는 찜통이다. "아버지가 지난주 아이스 조끼를 사주셨어요. 오늘 처음 입었는데, 확실히 낫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다시 상자를 들었다.

오전 배송이 거의 끝나갈 무렵, 박 씨는 차 안에 올라 짧게 숨을 골랐다. “오늘 취재 온다고 하니까 아내가 미숫가루를 챙겨줬어요.” 두 딸과 함께 차량 청소도 했다. “아이스박스에 넣어놔서 아직 시원해요.” 송보현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박 씨는 네 아이의 아버지다. 23살에 결혼해 지금은 중학생부터 갓난아이까지 4남매를 키운다. 첫째는 중학교 2학년, 막내는 올해 3월에 태어났다. 퇴근 후엔 아이들과 책을 읽고, 숙제를 함께 한다. "일요일 하루만큼은 아빠가 되려고 진짜 노력해요. 그 시간이 제일 좋아요. 힘들어도, 그 애들 얼굴 보면 다 괜찮아요."
택배 일을 하기 전 그는 일반 회사에 다녔다. 관리자급으로 승진하면서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 됐다. "가족이랑 시간 보내는 게 너무 부족했어요. 지금이 훨씬 힘들어도, 제 리듬대로 살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게 선택한 일이지만, 이곳에도 지켜내기 어려운 일상의 경계가 있다. 택배 노동은 주 6일이 기본이다. 최근에는 일요일까지 배송에 나서는 기사들도 많아졌다. 강제는 아니다. 하지만 주말 물량을 남겨두면, 월요일 업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기사 스스로가 다음 날을 위해 나서는 구조다. "일요일 하루라도 쉬지 않으면, 다음 주를 버티기 어려워요. 가족과 보내는 그 하루를 위해 6일을 버텨요."
오후 1시. 백운동 배송을 마친 박 씨는 사직동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셔츠는 땀에 절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힘들죠. 그래도 즐겁게 일해요. 아이들 맛있는 거 사줄 수 있고, 잘해줄 수 있으니까요." 오후 6시가 그의 예상 퇴근 시간이었다. 아직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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