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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정부부처가 정권의 소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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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정부부처가 정권의 소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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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789년 현재 연방정부의 틀을 세웠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강한 미국이지만 정부 수립 이후 약 240년 역사에서 1989년 보훈부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토안보부를 신설한 것을 제외하곤 큰 조직개편이 없었다. 새로운 행정수요가 생기면 기존 부처 기능을 조정하거나 하부 조직을 손보는 수준에 그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신설 조직인 정부효율부도 정식 부처가 아닌 2026년 7월까지만 존속하는 한시 기구로 출범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2001년 중앙 성청 개편으로 대장성을 재무성으로 바꾼 것이 유일했다.


정부조직의 안정을 중시하는 미·일과 달리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개편 시도가 이어졌다. 새정부 국정목표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부처를 만들거나 기존 부처가 여러 차례 쪼개졌다 합쳐지는 일이 반복됐다. 지식경제부나 미래창조과학부처럼 5년 단임제 정권이 끝나고 사라지는 부처들도 여럿 나왔다. 행정안전부는 4년 새 세 번이나 부처명을 바꿔다는 등 조직은 그대로 두면서 개명만 잦은 부처도 있었다. 역대 (단일) 정권 중 개편을 가장 크게 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다. '부처 왕 노릇 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재명 정부가 예산 기능 분리를 추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이때 탄생했다. 이재명 정부는 기재부 쪼개기와 금융 개편을 비롯해 과거 윤석열, 문재인 정부보다 훨씬 큰 폭의 개편안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잦은 부처 개편은 국정의 연속성을 해치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신설되는 부처의 건물 확보와 이사 비용, 현판과 명함을 다시 찍고 정부가 쓰는 모든 서류 서식을 바꾸는 제반 비용도 적지 않다. 업무 방식이나 카운터파트와의 관계를 완전히 새로 구축해야 하고, 정책 수요자의 주무부처에 대한 혼선 등 사회적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조직이 분리되면 자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한번 덩치를 키운 관료 조직은 다시 줄이기가 쉽지 않다. 최근 만난 기재부 한 관료는 "DJ 시절 재정경제원에서 분리될 때 100여명으로 나갔던 예산 조직이 통합될 때는 250명 이상으로 불어나 있더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조직개편 논의가 부처 경쟁력 강화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데 있다. 5년 단임제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번갈아 집권한다. 한쪽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전임 정권에서 바꿔놓은 걸 다시 되돌리고, 국정 쇄신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상징적 수단으로 부처 개편을 활용한다. 이런 이유로 부처 개편은 임기 초에 집중됐다. 짧으면 10일, 길어야 두 달 남짓이 걸렸다. 부처 기능과 업무의 현황 분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소수 위원에 의해 정부조직 개편이 주도되면서, 단명하는 부처가 여럿 탄생했고 부처 개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새정부는 계엄 사태라는 초유의 국가적 위기와 극단의 정쟁 속에 들어섰다. 반년이 넘는 리더십 공백기에 입은 데미지를 복구하고 민생 경제와 관세 협상 등 국민과 나라의 미래와 직결된 국가과제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이런 상황에 조직을 크게 뒤흔드는 부처개편 논의가 우선순위에 맞을까. 미국이나 일본처럼 100년, 200년 가는 정부부처가 한국에서는 불가능할까. 이번 정부 조직개편이 진정 "조직적 효율성에 따른 것"이라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부조직을 수시로 뒤집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부처는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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