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4500원 그대로
인건비·원자재값 등 상승
상법 개정, 주주 가격인상 압박
담배 가격 인상 가능성이 힘을 얻고 있다. 먹거리 가격이 줄줄이 인상됐지만, 담뱃값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면서다. 인건비와 물류비, 환율까지 각종 제반 비용이 오른 데다, 최근 상법 개정에 따라 주주가 가격 인상을 압박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되면서 담배 가격 인상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IBK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KT&G는 매출원가율이 담배 가격이 인상된 2015년 33.5%에서 지난해 52.0%까지 뛰었다. 원·부자재값과 물류비가 늘었고, 환율까지 치솟으면서다. 담배 업체들은 국내에서 생산한 담뱃잎 등을 사용하지만, 해외에서 필터와 각종 원료를 수입해 환율과 물류비 등이 오르면 제품 원가에 반영되는 구조다.
국내 및 수입 담배업체들은 2015년 정부의 담뱃세 인상에 따라 일괄적으로 담배 가격을 올린 이후 현재까지 가격(4500원)을 동결 중이다.
하지만 원가부담이 커지면서 담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JTI코리아는 지난 5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9종의 담배 가격을 100~200원 올렸다.
여기에 주주의 권익을 강화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담뱃값 인상 가능성에 더욱 힘이 실렸다. 배당 확대 등 주주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선 실적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주주들이 직접 담배 가격 인상을 요구할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 담뱃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 담뱃값(9869원)의 절반 수준으로, 35위다. 담배 가격을 올릴 당위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KT&G는 이달 초부터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치가 고공행진 중이다. 이 회사는 상법 개정안 통과 직후인 지난 4일 주가가 5% 급등한 데 이어 11일 장중 14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법 개정에 따른 향후 담배 가격 인상 기대감이 반영됐다"면서 "먹거리 전반의 물가가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담배 가격 인상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담배 세금을 올려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25.0%(여성은 4.0%)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담배 가격 정책은 담배 소비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담뱃값이 10% 오르면 담배 소비는 약 4%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 담배 시장은 정부의 정책이 가격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담뱃값은 담배사업법에 따라 제조업자나 수입판매업자가 판매가격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시·도지사에게 신고한 뒤 공고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는 개별소비세(594원)와 부가가치세(409원), 담배소비세(1007원), 지방교육세(443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841원) 등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3323원으로 73.8%를 차지한다. 궐련형 전자담배(HTP)는 1갑(20개비)에 세금 3004원(66.8%), 전자담배는 액체 1㎖당 2209원(49.1%)이다. 담배에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면 담뱃값도 인상될 수밖에 없다.
담배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 필요성에도 가격을 올리면 판매가 줄어들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이다. 국내 담배 판매량은 2년 연속 감소세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담배 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담배 판매량은 35억3000만갑으로 전년(36억1000만갑)보다 2.2%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원자재값과 인건비 등 인상 요인은 있었지만, 담뱃값을 올리진 못했다"며 "정부와 소비자 물가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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