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킨슨 '음식은 어떻게 우리 몸을 바꾸는가'
"비만은 질병, 의지력으로 해결 안 돼"
'체중 설정값' 재조정이 관건
운동, 식이요법만으론 역부족
설탕, 과당, 식물성 유지 떨쳐내야
과거에는 우울증을 단순히 의지력 부족 문제로 여기는 시각이 있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견디면 우울한 감정도 쉽게 사라진다'는 충고는 마음의 감기를 앓는 이들에게 큰 고통을 가했다. 이러한 시선은 비만을 대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독한 마음으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는 손쉬운 처방과 달리,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많은 이들을 낙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에서 20년간 비만 연구에 힘써온 앤드루 젠킨슨은 "(체중 조절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 방식의 문제"라고 말한다.
2023년 체중 120kg이던 존슨 씨는 위소매절제술로 위의 3분의 2를 절제했다. 물리적으로 섭취 가능한 양을 줄이는 수술이었다. 당시 수술을 지켜본 의대생들은 "의지력을 발휘해 절제하면 굳이 수술까지 받을 필요가 있느냐"며 의문을 품었다. 이에 저자는 '렙틴'과 '인슐린' 호르몬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어도 의지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돼 식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이다. 체내 지방량을 뇌에 알려 에너지 사용량을 조절한다. 렙틴 농도가 높아지면 시상하부가 이를 감지해 포만감을 증가시키고 식욕을 줄인다. 하지만 설탕과 정제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췌장에서 생성된 인슐린이 렙틴의 신호 전달을 방해해 뇌가 오판을 하게 된다고 젠킨슨은 설명한다. 오히려 식욕이 더 커지고 에너지 소비는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때 위에서는 그렐린이라는 강력한 식욕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는 체중 감소를 위기로 인식해 시상하부를 자극하며 강한 식욕을 일으킨다. 식사량을 줄이면 체중이 조금 감소하지만, 피로와 허약함이 지속되어 결국 음식을 다시 찾게 되고, 식이요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소매절제술은 이 그렐린 호르몬 생성을 원천 차단하는 수술로, 저자는 이를 질병 치료의 일환으로 본다. "사람들은 탐욕과 게으름을 비만의 원인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질병에 걸려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만으로 살을 뺄 수 없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신체의 기초대사량은 매우 뛰어난 상황 대응력을 가지고 있어서, 음식 섭취량을 줄이면 에너지 소비를 줄여 기존 체중을 유지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미국 인류학자 허먼 폰처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 1만9000보를 걷는 아프리카 사냥꾼과 미국 대도시 사무직 노동자의 하루 에너지 소비량은 비슷했다. 저자는 사냥꾼이 쉴 때 더 적게 움직이고 깊은 잠을 오래 잔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서 '체중 설정값' 개념이 중요하다. 저자는 체중 설정값이 유전과 환경이 결합된 결과로, 음식 종류나 스트레스, 수면 패턴 등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고 설명한다. 체중 감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도한 체중 증가를 막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체중 설정값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있다. 설탕이 등장한 이후 1500여 년간 비만 인구가 급증한 사실을 바탕으로, 저자는 설탕과 과당, 식물성 유지의 섭취를 조절해야 체중 설정값 변동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식물성 유지란 흔히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해바라기유, 카놀라유 등을 말하는데, 저자는 이를 심장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다. 실제로 2016년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에 따르면 1968~1973년 두 그룹으로 나눠 포화지방이 많은 식단과 식물성 유지 식단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았으나 조기 사망률은 오히려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저자가 권하는 바람직한 체중 감량법은 설탕, 과당, 식물성 유지가 포함된 음식을 피하고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운동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30~45초 강도 높은 운동 후 90초 휴식을 반복하며 근육을 강하게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체중 설정값이 낮아지고 지방 연소가 촉진되는데, 흥미롭게도 지방은 소화기관을 통해 배설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통해 감소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또한 66일간 반복을 통해 습관을 형성하는 법, 음식의 염분이나 칼로리가 비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 위고비 등 다이어트 약의 올바른 복용법 등도 인상적이다.
무작정 의지만 앞세워 다이어트에 실패한 이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지식 기반의 포만감을 선사한다. 다만 '~한다고 한다' 같은 확신이 부족한 표현이 내용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점은 다소 아쉽다.
음식은 어떻게 우리 몸을 바꾸는가 | 앤드루 젠킨슨 지음 | 표미영 옮김 | 현암사 | 308쪽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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