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쿼드 공조·과감한 항모 외교
대규모 軍 현대화 속도 내는 中
양국 자신감 과잉…핫라인 등 협력 필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에서는 새로운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양 지역에서 고조되는 미·중 간 긴장도 간과할 수 없다. 강대국 간 긴장은 냉전 이후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다. 외교를 전략적 대결 구도로 본다. 그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억지력을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일 연합사령부를 전투사령부로 격상시키고, 아시아 동맹국들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요한 건 무역 분야에서 제한적이고 불안정한 합의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군사적·전략적 대결 구도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내부 무역 갈등을 뒤로하고 인·태 지역에서의 강압에 공동 대응한다는 전략적 공조를 재확인했다. 여기서 말하는 '강압'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한층 노골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함'은 중국의 첫 국산 항모인 '산둥함'이 홍콩에 기항한 바로 그날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입항했다. 이는 앞서 중국의 항모 두 척이 서태평양에서 합동 훈련을 실시한 지 불과 몇 주 만의 일이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미국 항모가 필리핀에 입항한 날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 전구는 황옌다오(스카버러섬) 인근의 영해와 영공에서 해군 및 공군 전력을 동원한 전투에 대비한 순찰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불안감을 자아낼 정도의 규모로 군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세계 최대인 중국 해군은 극초음속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미 항공모함을 20분 내 격침할 수 있다고 헤그세스 장관은 밝혔다. 중국 공군은 서방보다 앞서 6세대 전투기 2대를 시험했고, 미사일 부대는 정밀 타격 능력을 빠른 속도로 축적 중이다. 워싱턴이 '시간은 베이징의 편'이라고 느끼는 불안은 이런 전력 강화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저명한 안보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RAND) 등을 통해 대만 유사시에 대비한 전쟁 모의훈련을 진행해왔는데, 도출된 결과는 대체로 미국에 불리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신속히 개입하면 대만의 함락을 막을 수 있지만, 상당한 인명 및 장비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런 시나리오들은 중국의 군사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전에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 같은 기류의 근간에는 비(非)군사적 차원의 견제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존재한다.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한 무역 제한과 수출 금지 조치는 오히려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며 미국 방위 산업 전반에 구조적 위험을 가하고 있다. 최근 이뤄진 무역 휴전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은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중 쌍방의 과도한 자신감은 위험을 더욱 키운다. 미국 내 일부 전략가들은 중국이 1979년 이후 실전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전투 준비 태세를 과소평가한다. 반대로 중국의 강경파는 미국이 열세에 있는 상대와의 비대칭 전쟁에서 거둔 승리에 자만하며, 자국의 첨단 전쟁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본다. 이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오판과 닮았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양국 모두 '제한적 전쟁(limited war)'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위험한 믿음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군사 이론가들은 A2/AD(접근거부·지역거부) 능력을 내세우며 국지적 우위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측 전략가들은 치명타를 통해 중국의 조기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이처럼 각자가 지닌 우위에 대한 인식은 양국 지도부가 자제하면 약해 보일 수 있다는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갈등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위기가 고조되는 데는 세 가지 핵심 요인이 있다. 첫째, 대만은 여전히 일촉즉발의 화약고다. 미국은 대만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판매했고 중국은 이를 견제하듯 해상 훈련을 강화하며 대만을 포위하는 양상을 보였다. 중국 반국가분열법은 대만이 독립 선언을 함으로써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무력 대응하도록 의무화했다.
둘째, 군사 작전 태세가 갈수록 무모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항공모함의 맞대응 배치는 양국 군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언제든지 발사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이 전면 충돌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셋째, 위기관리 메커니즘의 부재도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 기존의 전시용 핫라인(직통전화)은 사이버 공간이나 우주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관리하기에 적절치 않다. 이들 영역에서는 공격 주체를 식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반면 즉각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중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달러 중심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리며 식량난을 초래하고 세계 경제를 수축 국면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1945년 이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는 깨질 것이다. 이에 따른 여파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을 능가하는 훨씬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문은 매우 좁지만 분명 출구는 있다. 상하이에서 열린 미·중 해상 군사협의체(MMCA) 회담을 기반으로 군사 위기 시 소통하기 위한 핫라인을 복원하고 확대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신뢰를 쌓기 위해선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미 항모의 분쟁 수역 통과를 중단하고, 중국은 인공섬 군사화를 멈추는 등 상호 도발적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은 본질적인 공동의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감시, 핵융합 에너지 연구, 인공지능(AI) 안전 프로토콜 같은 분야에서 공동 노력을 기울인다면 '제로섬(zero-sum) 사고방식' 대신 필수적인 협력의 길이 열릴 수 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전운을 고조시키는 발언은 국내 정치 기반을 결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리더십은 위기를 자초하는 데 있지 않고 이를 예방하는 데 있다. 긴장을 완화하는 선택은 굴복이 아니라 리더십의 진정한 시험대다. 태평양은 전쟁터가 아니라 다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 뜨거운 수사가 아니라 차분한 이성이 필요하다.
장원란 캐나다 평화외교연구소 고문 겸 앨버타대학교 명예 석좌교수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To quieten drumbeats of war in US and China, cool heads must prevail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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