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을 강화한 메신저 '시그널(Signal)'이 국내 월간 활성 사용자(MAU) 20만명을 넘어섰다. 또 다른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한 범죄 단속 강화와 맞물려 이용자들이 더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찾으면서 '조용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시그널의 국내 MAU는 지난 5월 기준 16만5293명에서 6월에는 21만5858명으로 급증했다. 단 한 달 만에 5만명 이상 늘어났다. 시그널이 국내 MAU 2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그널은 2014년 미국 비영리단체 '시그널 재단(Signal Technology Foundation)'이 출시한 메신저 앱으로, 종단간 암호화와 무광고·비추적 정책을 핵심으로 내세운다.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가 모두 암호화되고, 삭제된 내역은 포렌식으로도 그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보안 메신저'로 주목받았고, 2021년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사용을 권유해 국제적으로 다운로드 순위가 급등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의 성장 배경에는 경쟁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지난해 10월부터 한국 경찰의 수사 자료 요청에 95% 이상 응답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그간 '수사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텔레그램에 대한 익명성 신뢰가 일부 약화되면서, 보다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원하는 사용자들이 시그널 등 대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인물들의 이용도 시그널 이미지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 핵심 인사들이 내부 연락 수단으로 시그널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중남미나 동유럽 등 반정부 운동이 활발한 지역에서도 시그널 이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익명성과 보안을 최우선하는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용자 기반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시그널은 고위급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경호처 관계자들과 비상시기 체포영장 집행 저지 지시 등을 시그널을 통해 주고받았다는 정황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정부 때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일정 수준의 보안 커뮤니케이션 용도로 시그널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인사들이 민감한 메시지 교환에 시그널을 활용했다는 점은 해당 앱의 '보안 메신저' 이미지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다만 시그널의 빠른 성장세 이면에는 우려도 있다. 메시지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은 보안이 필요한 일반 사용자에게는 장점이지만, 동시에 범죄 은신처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과 정보보안 업계에서는 "텔레그램 단속 강화 이후 범죄자들이 시그널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그널의 국내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텔레그램이 6월 기준 360만2786만명의 MAU를 보유한 데 비하면 시그널은 이의 6% 수준이다. 하지만 이달 20만명을 돌파하며 전월보다 사용자 수가 한 달 새 30% 이상 급증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IT업계 관계자는 "시그널은 이용자 수 자체보다도 사용자 유형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플랫폼"이라며 "보안, 익명성에 민감한 층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