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대선 때부터 ‘기획재정부 쪼개기’를 공약에 넣었고, 정부 출범 후에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당초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체제인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방안이 주로 거론됐으나, 최근에는 김영삼 정부 이전 체제인 ‘경제기획원-재무부’로 분리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경제 주무부처인 두 부처가 보유하고 있던 정책권한은 크게 예산, 세제, 금융이다. 그리고 경제부처 맨 위에 있는 경제부총리 부처의 경제총괄, 즉 경제기획(전략)과 부처 간 정책조정 기능도 있다. 국제금융(외환)과 국고, 공공(공공기관 담당) 등 업무도 있으나 큰 틀의 변화보다는 안정적 유지 또는 관리의 기능이 강하다.
노태우 정부까지는 경제기획원(경제총괄·예산)-재무부(세제·금융) 체제였고, 김영삼 정부의 재정경제원은 경제총괄·예산·세제·금융 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기획예산처(예산·공공)-재정경제부(경제총괄·세제·금융) 체제였으며, 이명박 정부 이후는 기획재정부(경제총괄·예산·세제)-금융위(금융) 체제다.
국가전략·경제구조개혁 고민했던 경제기획원
경제기획원은 한마디로 국가미래전략과 경제구조개혁을 담당했다. ‘한강의 기적’의 성공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부처였다. 부총리 부서인 경제기획원은 계획의 수립과 정책조정 그리고 예산, 외국자본 조달 및 배분, 통계관리 등 계획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를 장악해 일사불란한 정책 추진이 가능했다. 특히 예산을 가지고 정부 전 부처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고, 외국자본 배분을 통해 민간기업들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정부는 경제성장률과 산업별 생산수준, 총투자의 규모, 저축투자 계획, 외자조달 계획 등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시기별로 주요 목표를 정해 경제발전의 방향을 설정하고 관료, 기업가, 일반국민 등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는 신호를 보냈다. 2차 계획에서 7억달러 수출 달성과 수입대체 촉진, 식량자급과 산림녹화, 가족계획 등을 제시했고, 3차 계획에서는 중화학공업 건설과 공업의 고도화, 과학기술의 급속한 향상과 교육시설 확충, 4대강 유역 개발 등을 내세웠다. 5차 계획에서는 물가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10% 이내 안정, 경쟁촉진, 국민 기본수요 충족 등 새로운 목표가 나왔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비교하자면, 경제기획원은 미래 비전과 계획 수립에 익숙한 조직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식으로 개혁적 성향이 강했다. 재무부는 세금을 걷고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외환)을 관할하는 등 국가의 돈줄을 쥐고 있어 민간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 '관치금융' '모피아'라는 말은 모두 재무부에 대한 것이다. 현실에서 권력이 컸으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다.
경제기획(국가전략, 구조개혁)의 필요성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만든 것은 첫 문민정부여서 정부가 경제를 기획하고 조정했던 군사정부 시대의 유물을 청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민간경제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정부가 맘대로 기획·통제할 수 없다는 논리도 있었다. 어쨌든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그 원인으로 “공룡부처 재정경제원이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재정경제원은 기획예산처(예산)와 재정경제부(경제총괄·세제·금융)로 분리됐는데, 여기서도 ‘경제기획’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핵심 권한인 예산과 경제총괄 기능을 떨어뜨려 놓았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더라도 국가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고민하고 경제 구조개혁을 추진할 힘 있는 부처는 필요했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 전 경제개발계획을 세우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신경제 100일 계획’을 내놓고,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금융·기업·노동·공공 등 4대 부문 구조조정(구조개혁)을 하느라 바빠서 미래 전략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국가 비전과 미래 전략의 필요성 때문에 ‘비전 2030’을 만들어 발표했다. '비전 2030'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제시한 성장과 복지 동반성장 계획으로,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 삶의 질 세계 10위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 방안 등을 담았다. 박근혜 정부 때 기획재정부 1차관보(경제총괄 라인) 밑에 미래전략국과 경제구조개혁국을 신설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새로운 시대, 국가전략의 부활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지출 등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가 득세하고 선진국에서 ‘사회복지 국가’ 모델이 정착하면서 ‘큰 정부’가 각광을 받았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많은 나라들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며 전후 경제를 재건하거나 식민지 및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민간 영역이랄 게 별로 없었던 그런 나라들에서도 당연히 ‘큰 정부’일 수밖에 없었다. 자유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분리돼 냉전을 지속했던 국제정치적 상황도 ‘큰 정부’를 요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은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자유화) 기조로 전환했다. 이 기조는 1990년대에 세계적으로 확대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밀려왔다. 우루과이라운드를 필두로 시장개방 압력이 거셌고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하는 등 세계적으로 ‘자유 무역’이 대세가 됐다. 1991년 사회주의 붕괴로 냉전이 끝나고,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눈앞에 온 듯했다.
주지하다시피, 2017년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 30년간의 유례없던 ‘자유 무역’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미래 첨단기술을 쟁취하기 위한 ‘국가 산업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패권이 강해지고 기술굴기도 본격화했다. 미국에서 미국우선주의의 세력이 커졌고 중국, 러시아 등이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등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했다. 작금의 상황 때문에 세계 각국은 다시 ‘큰 정부’가 필요하게 됐다.
기획예산처보다는 경제기획원
새로운 시대, 국가전략이 다시 필요해진 시대라고 한다면 기획예산처보다는 경제기획원이 낫다. 당초 대선 직전에 이재명 캠프에서 ‘기획재정부 쪼개기’ 주장이 나온 것은 기재부가 추가경정 예산이나 ‘전 국민 25만원 지급’ 등에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재부가 정부부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히 ‘기재부는 싸가지가 없다’는 감정적인 접근과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큰 틀에서 국가전략과 비전을 고민하면서 정부조직을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할 때다.
경제기획원 체제는 명칭에서 보듯이 경제 총괄, 즉 경제 기획과 정책 조정 기능이 최우선인 반면, 기획예산처는 예산이 우선이고 경제 총괄 기능을 재정경제부에 두는 체제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전략과 비전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경제 총괄 기능이 중요한 시대다. 경제 총괄 기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기획원 체제가 기획예산처 체제보다 더 바람직하다.
정재형 세종중부취재본부장·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단독] "자식이 안 물려받는다는데"…이제 '남'에게도 기업 승계 가능해진다](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93/2023022008325229068_1676849573.jp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