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의 길]
Ⅰ. 에너지 전환이 몰고 온 갈등
89년만에 폐광된 강원 삼척 도계광업소
올해 12월 화력발전소 문 닫는 충남 태안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약 4시간, 20개 역을 지나면 강원 삼척에 위치한 도계역에 도착한다. 도계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까막동네'가 있다. 탄광 바로 아래 위치해 이곳에서 날아온 새까만 석탄 가루가 온 마을을 뒤덮어 지어진 이름이다. 한때 100가구가 넘게 살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인적이 드물다. 까막동네에서 10여분 더 걸어 올라가면 1936년 문을 연 뒤 89년 만인 지난달 30일 폐광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입구가 보인다.

탄광 시설 보수 작업을 담당했던 광부 황경석 씨가 2025년 6월 30일 폐광한 강원도 삼척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갱구 앞에서 지난 7일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폐광 일주일째인 7월7일 도계광업소를 찾았다. 굳게 닫힌 탄광 앞에는 광부들이 갱내로 들어갈 때 타고 다녔던 노란 열차가 철길에 멈춰 서 있었다. 적막이 감돌았다. 갱구 앞에 설치된 입갱 인원, 무재해 기록판도 6월에 멈춰 있다. 광부들이 대기하는 공간에 걸린 시계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으나 옆에 걸린 달력은 6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날 현장엔 막바지 정비 작업을 위한 인부 서너명만 남아 있었다.
갱구 앞은 지하수로 흥건했다. "저 지하수를 퍼내야 하는데…." 도계광업소에서 펌프 작업을 담당했던 김찬성 전 과장(50)은 셔터문이 내려진 갱구 앞에서 이처럼 말했다. 갱내에는 작은 물줄기를 타고 많은 지하수가 고인다. 물이 차면 작업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지반이 약해져 갱도가 붕괴하는 위험한 상황도 발생한다. 양수기로 물을 퍼내는 작업은 광부들의 안전을 위한 필수 업무다. 광업소 폐쇄와 함께 김씨도 직장을 잃었다. 김씨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지만 대한민국의 유일한 지하자원이 이대로 묻히기는 너무 아까운 것 같다"고 말했다.
도계광업소에서 25년간 일한 광부 황경석(64)씨는 "폐광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진짜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황씨는 "대체 산업도 없이 폐쇄되니까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고향 사람들도 남아있기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도시락을 싸 와서 갱내에서 먹었던 추억도 있다"면서 "곡괭이도 다 만들어 썼었는데 이렇게 폐광되니 안타깝고 아쉽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도계광업소 석탄노동자를 위한 직무 전환 교육을 실시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환 교육은 6월 말 폐광을 앞두고 올해 3월이 돼서야 시작했다. 황씨는 "나이가 적지도 않은데 1~2개월 교육하고 산림기능사 같은 다른 직업을 찾으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함께 일했던 동료 대다수가 아직 일을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석탄은 한 세기 동안 '국민 연료'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었다. 1970~80년대 국내 석탄 산업 전성기를 이끌었던 삼척 도계읍의 당시 인구는 5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 5월 기준 도계읍 인구는 8925명.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아 인구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도계광업소 폐광으로 인한 삼척시의 경제·사회적 파급 및 피해 규모를 98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역 공동화는 벌써 시작됐다. 도계에서 만난 주민들은 광업소 폐쇄 이후 "지역 주민 3분의 1은 이미 떠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평일 오후 시간 도계 전두시장에선 손님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30년간 상회를 운영해 온 김연옥(73)씨는 "광업소 문 닫고 주민들이 태백이나 동해로 이사해서 주말엔 아예 영업이 안된다"면서 "하루에 50만원 벌었다고 치면 지금은 10만원도 힘들다"고 말했다. 손님이 너무 없어 김씨는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은 들여놓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시장인 도계읍 5일장에는 과거 태백시, 삼척시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제는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정부는 도계 폐광지역 석탄 산업을 대체하기 위해 지정면세점 유치와 중입자가속기 기반 의료산업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계 주민들은 인구 이탈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 신산업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주민들은 폐광이 이미 예정돼 있었는데도 정부가 그동안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40년간 세탁소를 운영해 온 임진혁(64)씨는 "면세점은 10년 전부터 나온 말인데 누가 조금 할인받겠다고 도계까지 와서 물건을 사가겠냐"며 "정치인들이 그냥 하는 공약이지 믿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 예고된 석탄발전소 폐쇄에도 대책은 백지상태
도계광업소는 충남 태안이 마주할 미래가 됐다. 충남 태안석탄발전 1호기는 가동 중지가 연말까지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 '기존 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직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이제서야 태안1호기 가동 중지에 따라 고용 위기에 직면한 근로자들에 대한 현황 파악이 진행되고 있었다.
태안1호기 운영사인 한국서부발전 본사가 위치한 태안을 찾았다. 윤경학 서부발전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솔직히 말하면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 부위원장은 "정부가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LNG 등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은 몇 년 전에 했지만, 대책은 거칠게 말해 백지상태"라고 꼬집었다.
발전소 폐쇄로 발생하는 고용위험 근로자에 대한 현황 파악도 정부 차원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와 노조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서부발전 노조가 속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충남세종지역본부의 노동전환지원센터는 올해 3월부터 태안1호기 폐쇄에 따른 근로자들의 고용위험도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는 다음 달 중 나올 예정이다.
이진석 서부발전노조 사무처장은 "태안화력본부 1~10호기 전체로 보면 서부발전 직원이 1300명, 협력사가 1300명으로 총 2600명 정도인데 협력사의 경우 태안1호기만 따로 떼어서 몇 명이 고용위험 대상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호기 한개가 폐쇄되면 대체 어떤 분야에 일하는 몇 명이 일자리를 잃거나 혹은 전환 배치해야 하는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전제가 되는 구체적인 현황 파악이 안 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부발전은 이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폐쇄·전환 예정인 나머지 태안석탄발전소는 물론 타지역 발전소에도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서부발전 본사 직원보다 협력사 근로자들의 고용위험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윤 부위원장은 "협력사에서 석탄발전소 정비하는 분들을 두고 '기술 배우게 해서 다른 발전소 정비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발전소는 각 설비 분야별로 진입 장벽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협력사들이 정비 입찰할 때 근로자들의 경험 숙련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원청 입장에선 전환한 정비인력에 대한 안정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지역 연고성이 강한 근로자들의 고용위험도가 더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태안발전소에서 일하던 근로자에게 갑자기 삼천포로 가라고 하면 가족들과 생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특히 청소하시는 분이나 경비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고령자가 많은데 한평생 태안에서 근무한 분들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 경제 악영향도 피할 수 없다. 이 사무처장은 "주변 상인들이 '석탄 발전소가 폐쇄되면 우리는 뭐 먹고 사냐'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상시적인 근로자 감소는 물론 일정 기간 추가적인 인력이 투입되는 계획·예방 정비까지 감소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태안화력발전소 인근의 식당에선 내년에 대한 걱정이 크다. 발전소 직원을 대상으로 뷔페식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 식당 직원은 "지금은 하루에 150명 정도 오는데 석탄발전소 1기가 폐쇄되면 적어도 20~30명 손님이 줄어들 것 같다"며 "밥값이 8000원이니 하루 20명만 잡아도 16만원이고 20일이면 320만원의 매출이 줄어들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맞아 석탄 산업의 폐쇄는 예고된 변화였다. 그러나 전환 준비는 부족했다. 정책의 미비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도계광업소 폐쇄로 인해 발생한 대규모 실업, 지역 공동화 문제는 태안 1호기를 시작으로 2032년까지 6개 석탄화력발전기가 차례로 폐쇄되면 다시 반복될 수 있는 문제다.
여야가 앞다퉈 석탄·화력 노동자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인 '석탄화력발전 특별법' 15건을 내놨지만,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별법 제정 논의는 법안을 낸 의원들 간 의견 차이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지연 국제앰네스티 캠페이너는 "에너지 전환은 소외된 집단 및 개인이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정하고 인권 기준에 부합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은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고용승계, 전업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는 기후변화와 탈탄소화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모든 근로자와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보장하고, 논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위협 불평등한 요소를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도계=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태안=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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