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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터도 있네" 게임처럼 재미있는 자동차…현대는 돈 안 되는 차를 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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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22)
전동화 시대 주목받는 고성능 N 브랜드
아이오닉 5 N, 운전의 재미로 시상식 휩쓸어
가상 사운드·변속, 내연기관 운전 감성 유지
박준우 상무 "상상을 현실로, 용기있는 시도"
"현대차도 '펀카' 만든다" 업계에 증명

편집자주[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3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혁신 비결을 정리한 콘텐츠입니다. 예로부터 자동차 산업을 주도한 국가가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제조업의 꽃인 자동차 산업은 기술 발전과 수출, 고용의 측면에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과거 현대차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였다면 이제는 산업을 이끄는 선두 주자(first mover)로 부상했습니다. 글로벌 취재 현장에서 느낀 현대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소를 그대로 전달해드립니다. 연재는 40회 이후 서적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현대차 아이오닉 5 N. 현대차 제공

현대차 아이오닉 5 N.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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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의외의 장소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N'의 이름을 들었다. 중국 선전의 한 쇼핑몰에 위치한 샤오미 전기차 매장에서다. 샤오미 전기차 SU7에 앉아 자사 전기차의 장점을 설명하던 매장 직원은 갑자기 "한국차 중에서 관심 있게 본 모델이 있다"며 아이오닉 5 N의 사진을 꺼내 보였다. 자국 전기차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중국에서, 그것도 전기차 매장 직원이 한국차를 먼저 언급하며 호평한 장면은 꽤 인상 깊었다.


아이오닉 5 N은 2025 중국 올해의 차 시상식에서 '올해의 퍼포먼스 카'로 선정되는 등 중국의 공신력 있는 상을 받은 바 있다. 100여개의 로컬 업체가 한 해에 100종이 넘는 신형 전기차를 쏟아내는 중국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전 세계 최고의 신차를 뽑는 월드카 어워즈에서도 아이오닉 5 N은 2024년 '월드 퍼포먼스 카'에 선정됐다. 이 상은 글로벌 100여명의 자동차 기자들이 전문 분야인 고성능차의 주행 성능, 기술력, 감성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수여하는 상이다.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차량은 BMW의 M2와 MX, 페라리 푸로산게, 포르셰의 카이엔 터보 E-하이브리드였다. 아이오닉 5 N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후보를 물리치고 최종 수상자에 선정됐다. 이처럼 아이오닉 5 N이 전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호평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방문한 중국 선전의 한 샤오미 전기차 매장에서 한 직원이 현대차 '아이오닉 5 N'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우수연 기자

지난달 방문한 중국 선전의 한 샤오미 전기차 매장에서 한 직원이 현대차 '아이오닉 5 N'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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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도 운전이 즐거울 수 있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기차는 운전하기엔 재미없는 차, 지루한 차로 여겨졌다. 고속 주행 시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는 사라졌고, 기어를 변속하는 손맛도 없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가속력은 좋지만 주행 질감이 지나치게 매끈해서 무언가 모를 이질감을 얘기하기도 한다. 전자제어장치가 지나치게 많아서 운전자가 마음대로 운전하기보다는 차가 스스로 움직인다는 느낌도 낯설다. 운전의 즐거움은 '내가 차를 온전히 제어하고 있다'는 통제감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전기차는 이런 느낌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운전을 즐기는 사람 중에선 내연기관차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아이오닉 5 N은 어떤가.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한다. 운전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운전자와 자동차가 완전히 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단 주행 성능 전반의 탄탄한 기본기가 중요하다. 기본기에서 아이오닉 5 N은 합격점을 받았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자이퉁은 "스티어링 움직임, 힘의 배분, 가속 반응, 제동 등 주행 성능 관련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평가했다.


아이오닉 5 N의 또다른 차별점은 창의적인 발상이다. 현대차는 고성능 N 브랜드를 통해 '재밌는 전기차'를 만들고자 했다. 트랙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겠다는 콘셉트다. 전기차를 타면서도 내연기관의 엔진 소리나 변속 충격을 그대로 느낀다면 어떨까? 전자제어장치를 더욱 세분화해 운전자가 차량을 더욱 세세히 조율할 수 있도록 만들면 어떨까? 레이싱 게임에서처럼 속도를 추가할 수 있는 부스터 기능을 만들면 어떨까? 등 개발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아이오닉 5 N의 밑그림을 그려갔다.

현대차 아이오닉 5 N 스티어링휠. 현대차 제공

현대차 아이오닉 5 N 스티어링휠.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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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에는 가상의 엔진 사운드와 변속 시스템이 장착됐다. 전기차를 몰면서도 마치 내연기관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우선 개발진은 전기차의 조용한 주행 배경음을 채워줄 '가짜 소리'를 만들었다. △이그니션(내연기관 엔진음) △에볼루션(기계음) △수퍼소닉(제트기 소음) 등 3개의 소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엔진음을 선택해 주행하면 마치 내연기관차를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트기 소음인 수퍼소닉을 선택하고 트랙 위에서 페달을 밟으면, 내가 타고 있는 이동 수단이 자동차인지 비행기인지 아니면 정체 모를 우주선인지 헷갈릴 정도다.


아이오닉 5 N은 내연기관 엔진을 변속할 때 느껴지는 잔진동이나 차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가상으로 구현했다. 계기판에는 가상 엔진의 RPM과 기어 단수를 표시하고, 가상 변속을 하면 마치 실제 엔진의 RPM이 달라지는 것처럼 실감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주행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당겨 쓰는 부스트 기능도 있다. 마치 카트라이더 게임처럼 특정 버튼을 누르면 추가로 강력한 추진력이 생겨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기능이다. 평소 아이오닉 5 N의 최대 출력은 609마력이지만 운전대의 우측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면 부스트 모드로 돌입한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순간 최대 출력은 650마력까지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아이오닉 5 N이 시장에 던지는 의미는 가성비다. 고성능과 가성비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성능은 극대화하면서도 최적의 가격을 구현해낸 양산형 고성능차를 만들어냈다. 아이오닉 5 N은 유럽에서 7만4900유로에 판매된다. 경쟁사의 고성능 전기차 BMW i5 M60 xDrive(9만9500유로), 테슬라 모델 S 플레이드(11만9990유로), 포르셰 타이칸 4S(12만2000유로)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다. 성능의 측면에서 보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이오닉 5 N의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5초지만, 포르셰 타이칸 4S는 3.7초다. 최대 출력도 650마력, 598마력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가격은 1.5배 이상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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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돈 안 되는 고성능차를 왜 만들까?

비슷한 사양의 경쟁사 고성능차와 비교하면 사실 아이오닉 5 N의 가격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수익이 남지도 않는 양산형 고성능차를 만들었을까? 현대차의 고성능 N 브랜드를 총괄하는 박준우 N매니지먼트실 상무를 남양연구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스로를 '자동차 덕후'라고 부르는 그가 대화 도중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상상력과 용기였다. 이날 연구소 트랙 한편에는 N 브랜드 개발진이 만든 RN22e, N비전74, RN24 등 '롤링랩(움직이는 실험실)' 모델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 차들을 소개하며 박 상무는 "실험적으로 만든 롤링랩은 현대차 양산차의 아빠이자 엄마인 셈"이라며 "우리에게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상상의 영역을 기술을 통해 현실화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분에 따라 전기차의 사운드를 바꿔 운전할 수 있게 한다거나, 평소 장 보러 다닐 때 타던 차가 트랙 위에 올라가면 갑자기 드리프트가 가능한 스포츠카로 변신한다거나 하는 콘셉트도 모두 상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한동안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수소-전기 하이브리드카 'N비전74'의 탄생도 N 브랜드의 공상에서 출발했다. 박 상무는 "N 브랜드 목표는 단순한 선행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는다"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모한 시도를 해보고 그 과정에서 주변의 의심이나 우려를 넘어서려는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N 브랜드를 마케팅과 경쟁사와 협업에 적극 활용한다. 모터스포츠에서 각종 우승과 성과는 현대차의 기술력 수준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모터스포츠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경쟁사와 협업을 강조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현대차는 도요타와 공동으로 모터스포츠 행사를 개최했고, 11월 WRC(월드랠리챔피언십) 최종 시상식에서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이 만나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 1·2위를 다투는 두 수장의 만남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해외 주요 외신의 이목도 끌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 행사에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 행사에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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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브랜드의 탄생과 10년의 역사

'N'은 현대차의 글로벌 연구개발 연구소가 위치한 남양(Namyang)과 N 모델의 주행 성능 평가 기술연구소가 위치한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 서킷을 의미한다. 2012년 말 현대차는 유럽에 현대모터스포츠법인(HMSG)을 설립하면서 모터스포츠 출전을 공식화했으며, 201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N 브랜드를 공식 출시했다. 2019년 처음으로 월드랠리챔피언십(WRC) 제조사 부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모터스포츠에서 차량의 내구성을 극한까지 몰아붙이거나 차를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기술 등은 양산차 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N 브랜드와 남양연구소가 개발한 최신 기술은 모터스포츠에 가장 먼저 적용된 후 △롤링랩 △고성능 N 차량 △스포츠 트림 N라인 △일반 양산차에 순차적으로 탑재된다.


현대차 고성능 N 브랜드의 차세대 전동화 비전을 담은 고성능 롤링랩 'RN24'. 현대차 제공

현대차 고성능 N 브랜드의 차세대 전동화 비전을 담은 고성능 롤링랩 'RN24'.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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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N 브랜드의 고성능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롤링랩. 현대차 제공

현대차 N 브랜드의 고성능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롤링랩.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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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브랜드는 2017년 i30 N을 시작으로 벨로스터 N, i20 N, 코나 N, 아반떼 N 등 고성능차를 연달아 출시했다. 내연기관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보였지만 N 브랜드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전동화 전환이 본격화되면서다. 내연기관 기술력이 수십 년 이상 앞선 유럽, 미국 완성차 업체를 후발주자인 현대차가 따라잡기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전동화로 시장의 판도가 바뀌면서 고성능 전기차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2022년 N 브랜드가 선보인 두 대의 콘셉트카는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RN22e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활용해 만든 고성능 롤링랩이다. 훗날 이 롤링랩은 N 브랜드의 두 번째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6 N'의 기반이 된다. 또다른 롤링랩은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방식을 적용한 'N비전 74'다.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와 전기차 배터리를 함께 탑재한 모델로 전기차와 수소차의 장점을 융합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기존 전기차 대비 주행거리를 크게 늘리면서도 충전 시간은 5분 내외로 줄어든다. 과연 현대차가 수소 하이브리드라는 신기술을 실제 양산차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박준우 현대차 N매니지먼트실 상무가 아이오닉 5 N 공개행사에서 N 브랜드의 역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박준우 현대차 N매니지먼트실 상무가 아이오닉 5 N 공개행사에서 N 브랜드의 역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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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고성능車 다음 타자는 '아이오닉 6 N'

이달 현대차는 N 브랜드 두 번째 고성능 전기차인 '아이오닉 6 N' 공개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는 '세단'을 기반으로 만든 고성능 전기차라는 점이다. 기존 아이오닉 5 N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트랙 주행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통 세단을 바탕으로 진정한 '트랙 토이(track toy)'로서의 고성능 전기차를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아이오닉 6 N은 아이오닉 5 N과 동일한 플랫폼을 썼지만 무게 중심을 낮췄다. 이를 통해 안정적이고 정확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가상 변속 시스템에서도 기어비를 더욱 촘촘하게 적용해 차가 더욱 민첩하고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했다. 드리프트를 돕는 'N 드리프트 옵티마이저'는 운전자가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항목을 더욱 세분화해 운전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아이오닉 6 N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대중 브랜드인 현대차 특성상 양산차를 통해 남양연구소의 뛰어난 기술력을 충분히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N 브랜드는 우리의 기술력을 강조하면서도 ' 현대차 도 이렇게 재미있는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창구"라고 말했다.


현대차 N 브랜드의 두 번째 양산형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6 N' 프로토타입. 현대차 제공

현대차 N 브랜드의 두 번째 양산형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6 N' 프로토타입.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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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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