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 세법 개정안에 상속세 개편안은 담기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정부는 대선 전 여야가 구두합의한 배우자 공제한도 확대를 중장기 과제로 검토해나가기로 했다. 낡은 세제가 집값 상승 등 경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일부 고액 자산가에 대한 상속세가 중산층의 세금으로 변질된 만큼 상속세제 전반을 합리화하는 개편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달 말 발표할 세법 개정안에 상속세 개편안을 담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고, 직계존비속의 경우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나머지 상속인들의 경우 2억원으로 인적공제금액을 상향(신설)하고, 배우자의 경우 최소 공제금액을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속세 개정안을 발표했다.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는 대선 이전부터 여야가 구두합의를 이뤘던 만큼 기존 정부 개정안 중 배우자 최소 공제금액 10억원 상향이 새정부 세법 개정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이혼하며 재산을 분할할 땐 결혼생활에 대한 기여분을 인정해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데, 상속할 때만 세금을 매기는 건 조세 형평에 반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한국과 같은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미국·영국·덴마크 3국 가운데 배우자에 상속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민의힘이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자 "동의할 테니 바로 처리하자"며 상속세 개편에 적극 나섰지만, 대선공약집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지 않았다.
상속세 개편 논의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부터 이어져왔다. 상속세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중산층들이 내는 세금'이 돼 버린 현실에 따른 것이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피상속인(사망자) 중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 국민의 비율(상속세 과세 비율)은 2000년 0.7%에서 지난해 말 5.9%로 급증했다. 2000년에는 사망자 21만2000명 중 상속세 과세 인원이 1389명이었는데, 2024년에는 35만8400명 중 2만1193명으로 14배 급증했다. 이 수치는 과세 대상인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집계해 실제 상속세 납세자 비중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법상 최고세율(50%, 과세표준 30억원 초과)에 해당하는 피상속인은 1255명(신고 기준)으로 전체 6.2% 남짓이다. 반면 과세표준이 5억원 이하인 피상속인은 1만1468명(57%)으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기본 공제 10억원(배우자공제 5억원+일괄공제 5억원)을 받고도 수억 원이 과세 대상으로 잡힌 경우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3억4500만원을 넘는 현재 부동산 시장을 고려하면 서울 중산층 집 한 채만 물려받아도 눈덩이 세금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세대 간 수직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고 평등을 강화한다는 상속세 취지를 생각하면, 중산층이 상속세 부담까지 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유산세와 유산취득세 과세 방식 중 어느 쪽이 과세 형평이나 조세 정의 측면에서 합리적인가는 논쟁적인 이슈다. 20억원의 상속재산을 자녀 1명이 물려받은 가구와 100억원의 상속재산을 자녀 5명이 20억원씩 나눠 물려받는 가구가 있다면 후자가 훨씬 많은 상속세를 내야 한다. 과세표준이 커질수록 세율도 올라가는 누진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 상속받은 재산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야 하는 현형 유산세 방식이 '받은 만큼 낸다'는 과세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상속재산이 많을 때 자녀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게 맞는지, 자녀들 기준으로 똑같이 받았다면 세금도 똑같이 부담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견이 존재한다.
정부 관계자는 "세금 완화가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을 가져오게 하려면 장기적으로 상속세율 자체를 선진국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상속세가 유산취득세로 전환되면 세수 감소폭은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특권 감세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예측 가능한 시기에 안정감 있는 손질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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