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아웃펀드 MBK·소액주주 액트 등 활동
주주환원 요구부터 이사회 진입까지 주제도 다양
"오너와 대립각 능사 아니다" '온건' 행동주의 증가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행동주의가 '확산기'에 접어들었다. 과거 소수 외국계 헤지펀드의 독무대였다면 지금은 사모펀드(PEF), 행동주의 전문펀드, 기관투자가, 개인투자자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광범위한 생태계로 확대되고 있다. 행동주의 활동 주제도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요구부터 이사 선임, 경영 전략 제안까지 다채로워졌다. 초기 행동주의가 경영권을 직접 위협하는 '공격형'이었다면 최근에는 지배주주와 꾸준히 협의하는 '온건형'도 많아지고 있다.
이제 행동주의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정당한 투자 전략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여기에 제도적 기반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2016년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을 강조하며 도입된 스튜어드십코드가 주주권 행사 활성화에 물꼬를 튼 이후,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선임 및 3% 의결권 제한(3% 룰)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이 잇달아 도입됐다. 지난주 국회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3% 룰 확대 등을 포함한 개정 상법이 통과돼 행동주의의 활동 반경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바이아웃 펀드까지 가세 '행동주의 붐'
행동주의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며 국내에 등장했다. 이후 한동안 대부분 외국계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2018년 행동주의 전문 사모펀드 KCGI가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참전한 이후 얼라인파트너스, 트러스톤자산운용, 머스트자산운용 등 토종 행동주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기업 경영권을 사고파는 '바이아웃 펀드'로 유명한 아시아 최대 PEF MBK파트너스가 2023년 한국앤컴퍼니에 이어 지난해 고려아연에서 행동주의 전략으로 등장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재벌가 오너 3·4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행동주의 PEF의 확장세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제한적인 경제성장 전망과 시장 포화로 기존 성장방식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1400만명 개인투자자를 등에 업은 소액주주연대 활동도 활발해졌다. 지난달 말 태광산업의 교환사채(EB) 발행 시도에서도 소액주주연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상법 위반' 등을 주장하며 태광산업 이사회에 위법행위 중지 가처분을 냈고, 소액주주연대도 이사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하며 가세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처분 대상자를 확정하라"며 보완지시를 내렸고, 태광산업은 지난 2일 "소액주주 등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며 후속 절차 보류를 공식화했다.
지난달 23일엔 의결권모집 플랫폼 '액트'가 사모펀드 상장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 3.36%를 모아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며 주주제안으로 자사주 소각을 제시했다. 상법상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가진 주주는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할 수 있으며, 상장사의 경우 6개월 이상 1.5% 넘게 보유하면 주총 소집을 청구할 수 있다. 액트는 지난달 16일에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기업 엘티씨의 자회사(엘에스이) 분리 상장 추진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액트를 기반으로 모인 소액주주 연합은 지난달 11일 기준 전체 주식의 9.61%까지 확보했다.
외국계 펀드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달튼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말 콜마홀딩스 주식 5.02%를 취득한 후 올해 3월 5.69%까지 지분을 늘리며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했다. 이후 임성윤 달튼 한국법인 대표가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됐다.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에 참여한 보기 드문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행동주의, '공격'에서 '설득'으로
행동주의 활성화에 대해 '기업공격인가, 밸류업인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본효율성 제고나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면서도 "단기 이익 중심의 요구나 경영권 분쟁 등 부작용에 대한 균형 잡힌 대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실제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펀드의 공격적인 개입이 먼저 이뤄지며 행동주의에 대해 '단기 차익' 이미지가 고착됐다. 대표적으로 2003년 소버린이 SK㈜ 지분 14.9%를 매입해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요구했던 사례나, 2006년 칼 아이칸이 KT&G 지분을 확보해 자산 매각과 회사 분할을 촉구했던 사건은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기업공격'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켰다. 이 펀드들은 경영권장악에는 실패했지만 지분을 고가에 매각하며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고 철수했다.
반면 미국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선 행동주의가 초기에 가치투자형 경영참여 형태로 출발해 이후 공격형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이 연구원은 "미국의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형 행동주의' 사례는 저평가된 회사에 관심을 갖고 적절한 배당과 구조조정을 끌어내는 비교적 온건하고 가치지향적인 형태였다"며 "1960년대 들어 훨씬 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발전하고, 2010년대 스튜어드십코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투자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최근 국내에서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경영진과의 타협과 설득을 우선하는 '온건한 행동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2021년엔 가치투자 1세대인 이채원 의장이 국내 최초로 우호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라이프자산운용을 창립하기도 했다. 최근 롯데렌탈 유상증자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VIP자산운용은 "원칙적으로 비공개, 우호적 행동주의를 추구했지만 롯데 측에 여러 차례 비공개 서신을 보내도 강행할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행동주의펀드 대표는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더 이상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본질은 기업가치를 올릴 합리적인 방안을 소개하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펀드 측 이야기를 회사가 받아들여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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