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여왕 마고'는 프랑스 종교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 종교전쟁 역사에서 가장 참혹하고 잔인했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1572)'을 다룬다.
당시 프랑스 국왕은 샤를 9세(1550~1574)였는데 사실상 통치자는 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1589)였다. 샤를 9세가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어머니가 섭정을 했다.
가톨릭을 믿었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인 위그노 간 화평을 도모하고자 '마고'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자신의 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1553~1615)를 나바르의 왕 앙리(1553~1610)와 정략결혼시킨다. 나바르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던 독립 왕국으로 프랑스와 혈연·동맹 관계였다. 동시에 위그노들의 주된 거주지였고 앙리는 위그노의 정치적 대표자로 여겨졌다.
마고와 앙리의 결혼식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는데 결혼식 직후 파리에 모인 위그노 지도자들을 살해하라는 샤를 9세의 명령이 떨어진다. 이후 두 달가량 프랑스 전역에서 가톨릭의 위그노에 대한 잔혹한 살육이 이어지면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앙리의 첫 번째 정략결혼은 대학살의 단초가 됐지만 그의 두 번째 정략결혼은 인류 최초의 오페라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마고와 결혼한 앙리는 후일 프랑스 왕권마저 거머쥐며 앙리 4세가 돼 앙부르봉 왕조를 개창한다. 마고의 오빠들인 샤를 9세와 앙리 3세가 잇달아 후사 없이 죽으면서 앙리에게 왕위가 넘어온 것이다.
앙리 4세는 1598년 낭트 칙령을 공표하고 프랑스 종교전쟁을 종식시킨다. 앙리 4세는 이듬해 마고와 이혼한다. 정략결혼한 앙리 4세와 마고가 결혼 초기부터 별거 상태였는데 교황청의 이혼 승인이 20년을 훌쩍 넘겨 떨어졌다. 마고와 이혼한 앙리 4세는 1600년 메디치 가문의 마리아 드 메디치(1575~1642)와 재혼했다. 이 또한 다분히 정략적 목적의 결혼이었다. 1600년 10월6일 마리아 드 메디치의 고향 이탈리아 피렌체의 피티 궁전에서는 결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서 오페라 '에우리디체'가 공연됐다.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세계 최초의 오페라 작품이다.
만토바 영주 빈첸초 곤차가가 이 오페라를 관람했는데 빈첸조 곤차가를 수행했던 만토바 궁정 음악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도 함께 관람했다. 몬테베르디가 작곡해 1607년 초연한 '오르페오'는 최초의 오페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에우리디체는 대사가 많고 관현악단의 규모가 작아 형식적으로 오늘날의 오페라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오르페오에서는 관현악단 규모가 40명 정도로 늘면서 음악의 비중이 커져 형식상 오늘날의 오페라와 유사했다.
양인모 지휘자가 쓴 '히스토페라'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부터 시작해 오페라와 관련된 역사를 다룬다. 히스토페라는 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히스토리와 오페라를 합친 단어다. 오르페오를 비롯해 10개 오페라 작품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페인의 종교 갈등과 권력 구조를 그린 베르디의 '돈 카를로', 러시아 차르 시대를 다룬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푸치니의 '토스카', 치열했던 냉전 시대를 담은 아담스의 현대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 등이다. 오페라 작품이 어떤 역사를 배경으로 작곡됐는지, 작곡가가 작품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히스토페라 | 양진모 지음 | 책과함께 | 360쪽 | 2만5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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