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보험·정보통신마저" 서비스업 생산성, 제조업 40% 불과
"제조·서비스 융합 수출"…전략 산업화 필요
법·제도 정비부터…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포괄해야
국내 서비스 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이 지난 20년간 제조업의 40%에 수준에 머무는 등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제조업을 보조하는 역할로 인식하고, 내수와 공공 부문에만 의존한 결과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생산성은 이전 추세를 크게 밑돌고 있다. 서비스업을 제조업과 융합해 수출하는 등 전략 산업화하기 위해 법·제도 정비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3일 한국은행은 'BOK 이슈노트-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평가 및 정책적 대응 방향(정선영·최준·안병탁)'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정선영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애플·테슬라 등은 제조 상품에 서비스를 태워 부가가치 창출이 꾸준하고 규모도 크다"며 "제조역량이 높다는 건 우리나라의 강점이므로 서비스업을 제조업과 융합하는 등 전략 산업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생산성, 최근 코로나19 이전 장기추세 약 10% 밑돌아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그간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으나, 생산성·효율성 측면에서의 개선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1970년 이후 민간 서비스업(공공행정국방, 부동산업 제외)은 경제 규모와 고용 측면에서 각각 연평균 7%, 3% 성장하면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4%, 취업자 수의 65%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민간 서비스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지난 20여년간 제조업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 차장은 "독일·일본 등 주요국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서도 수준이 낮다"고 설명했다.
특히 팬데믹 이후의 생산성은 이전 추세를 크게 밑돌고 있다. 금융보험,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비대면 수요 확대, 디지털 전환 등에 힘입어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급등했으나 2022년 이후 하락 전환했다. 최근에는 팬데믹 이전 장기추세를 약 10% 밑돌고 있다. 정 차장은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다고 예상했던 고부가가치 서비스마저 성장 동력을 확인하기 힘들었다"며 "미국에서 하이테크 서비스업이 고용과 생산성 측면에서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을 견인한 것과 뚜렷하게 대조된다"고 강조했다.
도소매, 숙박음식, 운수창고 등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 역시 팬데믹 충격 직후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후, 점차 회복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과거 추세를 약 7% 하회하고 있다. 특히 숙박음식, 사업지원, 보건복지서비스업 등 노동집약적 업종의 생산성은 2020년에 급락한 이후 팬데믹 이전보다도 낮은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제조업 보조·내수 전용 인식, 서비스산업 구조적 제약 요인
서비스 산업 생산성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는 ▲제조업 보조, 규제 산업, 공공재로의 인식 ▲고부가가치 부문의 지나친 내수·공공 의존, 미흡한 혁신 ▲저부가가치 부문의 생계형 자영업 간 회전문식 경쟁이 꼽혔다.
우리나라 서비스업은 2020년 기준 총산출의 약 32%가 상품 수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제조업 생산과 수출을 지원하는 보완적 역할(물류, 운송, 금융 등)에 주로 집중했다. 이로 인해 독립적인 수요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 측면이 있다. 정 차장은 "사회 전반의 인식에서도 서비스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라기보다는 공공재나 무상 제공되는 활동으로 취급된 경향이 있다"며 "이런 인식은 산업정책이 서비스업을 규제와 공공성 중심으로 접근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는 민간의 자본투자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서비스업은 여전히 노동집약적 구조에 머물러 있다. 그는 "민간 서비스업의 투자율은 2000년 26%에서 2022년 18%로 하락하고 주식시장 내 시가총액도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머무는 등 자립적인 성장 기반이 취약한 구조가 고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내수·공공부문에 대한 높은 의존은 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혁신을 통한 수익 확대 유인을 약화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지식서비스는 2021년 기준 기업 총매출의 약 98%가 정부·공공, 국내 기업·소비자와의 거래 등 내수에 집중됐다. 주요국의 고부가가치 서비스 기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외연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 지식서비스 기업 중 해외시장 진출 경험이 있는 기업의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정 차장은 "최근에는 인구감소 등으로 내수의 성장 모멘텀이 약화한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국내시장 진입도 가속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국내 수요기반 축소와 경쟁 심화라는 이중의 압력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에서는 생계형 자영업 진입이 확대되면서 영세성이 고착화했다. 2024년 자영업자의 60%가 저부가서비스에 종사했고, 저부가서비스 자영업자 중 73%가 1인영업자였다. 진입장벽이 낮고 초기자본이 적게 드는 업종에 1인 또는 가족 운영 사업체가 몰리면서,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려워지고 영세 자영업자들만의 진입·퇴출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회전문식 경쟁'이 초래돼 기업 성장과 자원 재배분, 일자리 창출 기반이 제약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조·서비스 융합 수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포괄해야
정 차장은 서비스 산업을 전략 산업화하기 위해 법·제도 정비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서비스 융합 트렌드를 반영해 모두를 포괄하는 산업정책의 상위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 제도로는 포섭하기 어려운 신산업과 융복합 서비스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완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범부처 컨트롤타워 체계 구축, 디지털 인프라·표준화·데이터 연계 등 공통기반 마련, 융합을 저해하는 규제의 체계적 정비가 법안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면서 포용적인 정책 플랫폼이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입법이 추진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특성 산업 육성 전략보다는 융합 기반 산업구조를 다룰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고부가가치 부문에선 제조 강점을 활용한 수출전략을 짜야 한다고 진단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각각 독립적으로는 수출 경쟁력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산업 간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며 수출 외연을 전략적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 차장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에서 축적된 지적자산과 뛰어난 운영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제조 지식을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 산업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는 높은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며 "콘텐츠, 디지털 헬스케어 등 글로벌 수요가 높은 분야는 제조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디지털 기반 서비스가 지닌 한계를 보완하고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타 플레이어' 성공 사례가 중요하다고 봤다. 게임 등 콘텐츠, 바이오 등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정 차장은 "잠재력은 있으나 규제 등 장벽으로 수출에 한계가 있었던 업종들부터 순차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부가가치 부문에선 생계형 자영업자의 임금 일자리 전환,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저부가가치 부문의 구조적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영세 자영업을 직접적으로 축소하기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해 생계형·비자발적 자영업자가 중견 이상 규모의 기업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차장은 "이를 위해 자본 축적과 사업의 규모화가 가능하도록 기업의 자본 접근성을 높이고, 법인화·프랜차이즈 내 직영 비율 확대 등 기업화 촉진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며 "창업·폐업 등 산업 내 순환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맞춤형 금융을 강화해 산업의 역동성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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