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받는 피지컬 AI
잠재 가치 50조 달러 시장 전망
스스로 계획·판단하고 행동까지
"일상 아우르는 '로봇 집사' 목표"
'피지컬AI'는 산업계의 새로운 전략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생산현장 뿐 아니라 순찰 등 경비, 농업 분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피지컬 AI는 AI 기술이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기기와 자율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능형 시스템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피지컬 AI가 공장, 운송, 휴머노이드 로봇 등 다양한 산업을 혁신하며 잠재 가치가 50조 달러(한화로 7경2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50조 달러' 시장 기회…분주해진 기업
로봇 전문기업 '로보티즈'는 피지컬 AI 열풍으로 올해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로봇 관절에 해당하는 액츄에이터 등 로보티즈의 주력 상품이자 로봇 핵심 부품의 해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6%나 늘었다. 최근에는 바퀴로 이동하는 작업형 휴머노이드 'AI 워커'를 공개했다. LG전자 측에 1차 납품을 마쳤고 올해 100여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로보티즈는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결성된 'K-휴머노이드 연합'에 참여해 국산 기술 기반의 양산형 휴머노이드 개발에 힘쓰고 있다.
마음AI는 자체 개발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적용한 자율주행 4족 순찰 로봇을 납품하기 위해 국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기업 3~4곳과 논의 중이다. 김문환 마음AI 부사장은 "공장부터 빌딩, 공항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경비 업무를 하길 원한다"며 "계단이나 장애물은 바퀴가 달린 로봇은 이동이 어려워 기동성이 좋은 4족 로봇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마음AI는 농기계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개발한 농약 살포 로봇에 시각 인식과 언어 이해, 동작 제어를 통합한 AI 모델(WoRV)을 탑재해 동남아에 6000㏊ 규모의 대규모 실증(PoC) 프로젝트를 확보했다. 김 부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 화학성 물질이 있는 공간에서 하는 업무를 비롯해 힘들고 위험한 일을 로봇에 맡기려는 수요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족보행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한 카이스트 연구진이 창업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해 말 삼성전자에 인수되며 주목받았다. 자율주행 전문기업 '마스오토'도 현재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협력해 무인 화물차 기술과 운영 모델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많은 국내외 AI 기업들이 피지컬 AI를 통한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단순히 가사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돌봄과 정서적 동반자 관계까지 이어지는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로봇 집사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피지컬AI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퓨리오사AI는 피지컬AI가 요구하는 높은 연산 처리 능력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AI 반도체를 개발하며 주목받고 있다. 퓨리오사AI가 자체 개발한 2세대 NPU(신경망처리장치) '레니게이드(RNGD)'는 고성능 대형언어모델(LLM)과 멀티모달 추론에 최적화돼 있다. TSMC 5㎚ 공정과 HBM3 메모리를 적용해 엔비디아 칩보다 두 배 이상의 전력 효율을 확보했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생성형 AI를 넘어 '움직이고 작동하는' 피지컬AI의 실현에는 저전력·고효율 연산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이 회사는 하반기 성능을 더 고도화한 3세대 칩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네이버는 연구개발(R&D) 자회사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피지컬 AI를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랩스는 실제 환경을 3D 가상 공간으로 구축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로봇, 자율주행차, 확장현실(XR) 등의 기술과 접목시키면 다양한 피지컬AI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데이터·배터리는 현실적 한계…"부처 총동원 지원돼야"
저전력 반도체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은 데이터 확보 방식도 기존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병호 고려대학교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산업이나 스마트홈 분야에서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규모의 정제된 행동 데이터가 필요한데, 현재는 관련 데이터가 매우 부족하다"며 "일부 기업들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합성 데이터를 자동 생성하는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저전력 고효율의 무게가 가벼운 배터리를 개발하는 숙제도 남아있다. 로봇의 관절마다 붙어있는 모터가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백팩처럼 배터리를 부착하면 하중이 로봇의 등에 실려 작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아직 피지컬 AI에 대한 구체적인 법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로봇이 인명 피해 등 사고를 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는 피지컬 AI를 차세대 기술로 주목하고 관련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최근 피지컬 AI 모델을 발굴하고 기술·정책 로드맵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잇달아 발주했다. 생성형 AI를 하드웨어와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직접 작동하는 형태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는 궁극적으로 생산 가능 인구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줄 대책"이라며 "AI 전담 부처인 과기정통부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에서 사업을 제시해 기업에 기술 검증 기회를 제공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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