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금 간 경쟁 유도하는 호주
10년 평균 수익률 7%대로 높아
리스크 관리 장치도 촘촘하게 설계
미국, 디폴트옵션으로 고수익 집중
유럽서 주목받는 스웨덴·네덜란드
"일본 사례는 참고하기 어려워"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호주와 영미권 사례가 주목받는다. 이들 국가는 사적 연금 제도가 발달한 곳으로, 우리나라처럼 퇴직연금 제도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개인주의 특성을 보이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운용 투명성과 경쟁에 따른 수익률 향상, 수탁자 책임 강화 등의 해외 사례 이점을 국내 상황에 맞게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양한 기금 경쟁하는 호주
호주는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을 두고 있다. 슈퍼애뉴에이션은 확정기여(DC)형 중심의 법정 필수 연금으로, 대부분 근로자가 법에 따라 의무 가입하고 있다. 근로자가 여러 기금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해 기금 간 경쟁을 유도,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기금 유형으로는 기업형(기업 자체 설립)과 산업형(같은 업종 기업 연합), 공공형(정부·공공기관 설립) 등 비영리 수탁 법인이 있다. 영리 수탁 법인인 소매형(민간 금융사 설립)도 허용한다.
공격적인 자산 배분도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배경이다. 호주는 대다수 근로자가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인 '마이슈퍼(MySuper)'를 택한 가운데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 비중을 2대 8로 두는 등 고수익에 집중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10년 평균 수익률을 보면 산업형(7.5%)과 공공형(7.0%), 기업형(6.6%), 소매형(5.7%) 순으로 높았다.
다만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제도적으로 리스크 관리 장치를 정교하게 둔다. 전문가 중심의 이사회와 외부 투자 자문사를 두고 분산 위탁 운용을 택하는 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5월 발간한 '사적연금 구조개혁과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을 보면 호주의 대표적인 산업형 기금인 시버스(Cbus)는 해외 주식에만 11개 외부 운용사를 위탁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의 경우 위험 자산 비중을 높게 두되 글로벌 분산 투자를 통해 장기 성과를 얻는 식이다.
수익률과 신뢰도에 따라 낮은 성과를 보인 기금들이 점차 도태되면서 운용 효율성이 높은 대형 기금으로의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는 점도 호주 기금형 제도의 특징이다. 실제 2017년에서 2023년으로 오면서 공공형은 25개에서 8개로, 산업형은 37개에서 22개로, 소매형은 117개에서 69개로 줄었다. 기금 대형화는 고정 비용을 줄이고 전통 자산뿐 아니라 대체 자산으로 자산 배분을 확대하는 등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는 데 이점이 있다.
미국·영국도 높은 수익률 자랑
미국은 DC형과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제도를 택하고 있다. 다만 DC형이 보편화했으며 대표적인 모델이 401K다. 401K는 여러 DC형 중 민간 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고용주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독립된 신탁 계정을 두고, 자산 운용 책임을 지는 '지명 수탁자(민간 금융 기관)'를 지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계약형 DC와 달리 기금형의 성격이 짙다 보니 학계에서 기금형 DC 주요 사례 중 하나로 미국을 꼽는 편이다.
401K는 근로자가 수익률을 높이도록 선별된 금융 상품을 제공해 직접 선택하게 하거나, 디폴트옵션을 통해 자동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자산을 배분한다. 고수익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실제 미국 자산 운용사인 뱅가드(Vanguard)의 401K 가입자 연평균 수익률은 2023년 기준 13.7%로 높았다. 최근 5년간 평균 수익률도 9.7%에 달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최근 10년간 연환산 수익률(2.31%)보다 4배 높은 수치다.
영국은 계약형과 기금형 퇴직연금을 함께 운영하는데, DC 기반의 기금형이 주류다. 특히 2012년 도입된 국가퇴직연금신탁 '네스트(Nest)'가 주목받는다. 네스트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퇴직연금을 기금화한 뒤 독립된 수탁자가 이를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전문적이고 투명한 기금 운용을 통해 7~8%대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과 유사하다.
유럽은 오래된 노사정 합의체 기반으로 전국 또는 산업별 단위로 공적 연금 제도를 둔다는 점에서 연대주의 성격이 강하다. 스웨덴의 경우 DC 기반의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프리미엄 연금(PP)'을 두고 있다. PP는 국가가 설립한 기금 운용 기관(AP7)이나 민간 운용사를 통해 운용된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DB 기반의 기금형 제도가 가장 발달한 곳으로, 5~7%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기금형 검토 과정에서 네덜란드 사례에 주목하기도 했다.
"해외 참고하되 국내 상황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되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기금형 제도를 설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영미권과 호주의 기금형 퇴직연금은 사실 한 뿌리"라며 "우리는 후발주자로서 다른 나라에서 잘하는 것을 국내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퇴직금 제도에서 출발하다 보니 해외와는 꽤 많이 다르다"며 "노사 관계와 자본 시장 등의 특수 상황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일본이 기금형도 함께 두고 있지만 계약형과 기금형 간 수익률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을 들어 기금형 도입을 우려하고 있다. 송 위원은 "일본은 우리처럼 퇴직금을 두다가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해 유사점이 있다"면서도 "일본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기금형이 아닌 데다 적극적으로 기금형을 육성하는 곳은 아니다 보니 다른 나라 사례처럼 살피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종=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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