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매일 타던 출근버스가 사라졌다
지난 26일 오전 3시50분 의정부시 가능동. 문을 연 가게 없이 고요한 길목에 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정류장으로 모여들었다. '106-1번' 버스에 오른 이들은 서울로 출근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이다. 이 버스는 지난해 8월 폐선된 106번 버스의 대체 노선이다. 50여년 의정부 가능동과 종로 5가 사이를 달렸던 106번 버스는 서울 강동구 인근의 새 교통수요에 대응하는 노선 신설을 위해 운행 중단을 결정했다. 서울 중심부인 종로5가로 가던 106번과 달리 106-1번은 도봉산역까지만 운행한다. 이로 인해 106번이 지나던 지역 승객들은 도봉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창경궁 인근으로 출근하며 10년 넘게 106번 버스를 애용했던 이모씨(58)는 "시간이 촉박할 때는 환승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도봉산에서 종로 쪽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탈 때 항상 서두르게 되고, 행여 늦을까 마음이 급해진다는 것이다. 이씨는 106-1번 버스의 하차 장소와 서울로 향하는 갈아탈 버스 정류장 사이에 난 길도 건너야 한다.

오전 4시28분. 106-1번 버스는 '도봉산역 광역환승센터'에 닿았다. 승객들은 이씨 말대로 일제히 길을 건너기 위해 뛰었다. 얼떨결에 기자도 함께 뛰었다. 우리는 건너편 '도봉산역' 정거장에서 서울 시내버스로 환승해야 한다. 100m쯤 걸어 돌아가면 횡단보도가 있지만 물리적 거리보다 바쁜 마음에 '심리적 거리'가 더 멀었다. 뜀박질을 한 기자와 다른 이들이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숨 가쁘게 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던 이씨는 기자에게 "왜 도로 바깥쪽에 내려주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다 (환승하기 위해) 무단횡단하고 뛰어가는데 사고가 날까 두렵다"고 했다.
하루 940만 '대중교통 메카'의 그림자
지하철, 버스, 그리고 경전철까지 서울은 하루 940만명이 이용한다는 대중교통을 거느린 메가폴리스다. 그렇다면 서울 대중교통의 핏줄은 도시 속 곳곳을 제대로 잇고 있을까.
답은 '아니요'이다. 서울 경계를 넘어 경기도를 오가던 버스 노선은 줄줄이 끊기고 있다. 지난해에만 106번을 비롯해 704번(양주 장흥~서울역), 542번(군포~서울 신사), 9714번(파주 교하~남대문) 등 경기~서울 구간 버스 노선이 단축되거나 폐선됐다. 올해만 해도 1155번(남양주 청학리~석계), 774번(은평~파주)의 노선이 단축됐다.
지난해 6월부터 최근 1년간 서울시 버스 노선조정 명령을 분석한 결과 서울 내에서는 수요 증가에 따라 정류장 증가·증차가 이뤄졌지만 경기 지역에는 감차와 폐선이 중심이었다. 조정이 이뤄진 19개 노선 중 폐선 및 단축된 노선 7개 모두 경기 구간을 포함했다. 이렇게 단축·폐선된 차들은 모두 서울 내 이용 편의 개선, 아파트 신축 수요에 따른 노선 신설이나 증차에 활용됐다. 길게는 수십 년, 역사가 긴 노선이 연이어 폐선되자 경기에서 서울로 오가던 승객들은 반대 의견을 냈다. 특히 기자가 탄 106번 대체노선 106-1번 버스는 오전 4시에도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고, 중간에는 서서 가야 할 정도로 만원이었다. 때문에 민원이 집중돼 의정부 시장까지 참석한 106번 버스 폐선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학교도 지하철역 '빈익빈 부익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서울 안에서도 발생한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에서 찾아본 2024년 서울시 통근·통학 평균 소요시간을 보면 지역별 대중교통 접근성 편차가 드러난다. 권역별로는 서울 서남권에서 통근·통학에 평균 35.16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가장 길었다. 자치구별로는 금천구 41.77분, 영등포구 40.91분, 노원구 40.27분 순으로 길었다. 통근 시간이 가장 짧은 서대문구(27.85분)와는 최대 13분 차이가 난다.
지하철역 분포는 '빈익빈 부익부'였다. 코레일·서울교통공사 관리 노선은 송파구에 무려 28개 지하철역이 몰려 있고, 중구에 23개, 강남구 21개 지하철역이 있었다. 반면 강북구는 3개, 관악구 4개, 금천구 4개에 그쳤다. 이 같은 편중의 결과로 서울시내 대학 가운데 지하철역 한 곳도 접근이 힘든 대학도 나타난다. 성북구에 자리한 국민대는 학교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까지 도보로 25~30분이나 걸린다. 학생 대부분은 4호선 길음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학교까지 온다. 그런데 길음역 인근은 상습 차량 정체구역이다.
국민대 학생 허모씨는 "길음역에서 버스를 타도 비가 오거나 퇴근길 등 차가 막히면 15분 거리를 1시간30분 동안 간 적도 있고, 차가 너무 안 움직여 버스에서 내려 1시간 걸어서 간 적도 있다"며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같은 학교 3학년 윤도영씨(23)는 "미아사거리에서 등교시간에 버스를 타면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를 한 번 보내야 할 정도"라며 "특히 학교에서 길음역으로 가는 버스는 상명대를 거쳐서 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꽉 차 있어서 더 힘들다"고 했다.
이 때문에 국민대를 비롯한 성북구 소재 6개 대학은 '강북횡단선' 경전철 건설을 요구해왔다. 강북횡단선은 청량리역, 성북구 정릉·길음, 서대문구 홍제,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양천구 목동역을 잇는 경전철이다. 윤씨는 "서울에 있는 웬만한 학교들은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라며 "졸업 때까지 누리기는 힘들겠지만 재학생 입장에서 강북횡단선이 있다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성 논리 vs 이동 약자 위한 배려
경기 구간 버스 노선 폐선과 서울내 교통 소외지의 존재는 경제 논리와 연관이 있다. 성북구 대학들이 요구해 온 강북횡단선은 지난해 6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 심의에서 탈락했다. 시민 접근성 향상보다 수익성을 우선한 셈이다.
2004년 준공영제와 함께 도입된 버스총량제도 결국 재정 문제와 뗄 수 없다. 총량제에 따르면 신규 노선에 버스를 배치하려면 기존 노선을 없애 해당 차량을 활용해야 한다. 이는 신규 노선 신설을 어렵게 하고, 신설되더라도 다른 지역 시민이 이용하는 노선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경기 지역 노선이 폐선되고 서울 강동·장위에 노선이 신설된 것도 이 같은 흐름에서다. 서울시는 교통 혼잡과 공해를 줄이기 위해 총량제를 실시한다는 입장을 내세우지만 버스회사의 적자를 보조금으로 채워주는 준공영제하에서 재정 과다 투입을 막기 위해 증차를 억제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차량을 늘리게 되면 그만큼 예산이 들어가고, 그 때문에 총량제로 묶는 것"이라며 "시가 직접 운영하는 공영제 체제였다면 (소외 지역에도)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구간 노선 폐지에 대해 서울시는 교통 흐름을 감안한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기·인천 곳곳에서 서울 중심지까지 쭉 들어오는 것만 원하니 부하가 걸린다"며 "서울 전체 교통을 생각하면 구파발, 도봉산 등 외곽 허브에서 노선을 끊어서 오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 버스가 7000여대인데 경기에서 6000대 이상이 (서울로) 진입하기 때문에 도로망에 비해 현재 (경기) 버스 공급이 적은 것도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중교통은 가급적 접근 기회균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버스 총량제하에서는 결국 수요가 적고 운송이 힘든 노선들이 먼저 폐선되는데, 이렇듯 효율성만 따라가다 보면 소외 지역이 늘게 된다"며 "지금껏 지켜온 서울시의 세계적 대중교통 서비스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약자와 소외지를 고려하는 형평성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차新 교통난민 보고서
- 뛰어!… 새벽마다 목숨 건 무단횡단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