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보다 기업 경쟁력이 먼저
미국 성장주들이 보여준 '진짜 해답'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 주식 시장이 모처럼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 상황의 안정이 투자 심리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자금 유입도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코스피 5000시대'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상징적 목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꾸준한 수익률을 기대하고, 예측 가능한 흐름 속에서 장기적으로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증시는 지난 100년이 넘는 동안 연평균 7~8%의 꾸준한 수익률을 유지하며 세계 자본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는 바로 '신뢰'가 있었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금을 투입했다. 이 자금은 다시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견인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닿아 있다. 흔히 지배구조 불투명성이나 후진적 주주환원 정책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이유는 '성장성 부재'다.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가 낮으니 주가가 오르지 않고 외국인 자금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나 배당 확대 같은 주주친화 정책은 필요하다. 전 정권에서 추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 소각, 배당 확대 등 재무적 처방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는 단기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지만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훼손하면서까지 이뤄지는 배당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린다.
주가가 높다는 것은 결국 '미래 현금 흐름이 견고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현 정부도 '배당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배당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확보한 현금을 주주에게 나누는 행위다. 기업이 성장과 혁신을 위한 투자를 충분히 하고도 남는 여력이 있을 때 그 성과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강제적이고 과도한 배당 요구는 결국 연구개발, 신규 사업, 설비 확충 같은 미래 투자를 위축시킬 위험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미국 증시의 성장주들―테슬라, 엔비디아, 구글(알파벳)―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이들은 모두 '강력한 성장 서사'와 '지속 가능한 투자 스토리'를 기반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흥미롭게도 테슬라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당을 한 적이 없다. 엔비디아와 구글 역시 1%도 안 되는 낮은 배당률을 유지해 왔다. 이들의 경쟁력은 복잡한 지배구조나 고배당 정책에 있지 않다.
오히려 실리콘밸리라는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 속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과감한 인수합병, 유연한 자금 조달을 통해 미래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의 기대에 맞춰 기업 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워가며 투자자에게 자본이득이라는 형태로 막대한 보상을 안기고 있다.
한국도 이제 이런 구조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단순히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 매입에만 몰두해 단기 주가 부양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환경을 조성하고, 유망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며, 건전한 인수합병을 장려하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지배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코스피 5000이라는 목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도달하느냐다. 정부의 직접 개입이나 단기 부양책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지속가능한 성장은 이룰 수 없다.
정부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기업들이 스스로 혁신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환경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다. 코스피 5000은 구호로 외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안이하게 접근한다면, 그 숫자는 영원히 '꿈의 숫자'로만 남게 될 것이다.박성규 미국 윌래밋대 교수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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