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기습발표
서울 아파트 74% 대출 감소 타격
정부가 28일부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고강도 규제를 시행하면서 하루 차이로 정식 계약을 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계약 포기하거나 가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놓였다.
윤지해 부동산R114 프롭테크리서치랩장은 30일 "27일 안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면 종전 조건으로 잔금 대출이 가능하고, 중간에 대출이 중단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식 계약이 된 상태라면 계약 파기 사유가 없지만, 단순 가계약 상태였다면 이번 대출 규제를 그대로 적용받는다"며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처럼 매도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이번 규제는 정부가 지난 27일 정오 이전에 공식 발표한 내용이다. 윤 랩장은 "자금 여력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정부 발표 직후 같은 날 오후 안에 서둘러 정계약으로 전환했을 것"이라고 했다. 발표와 시행 사이 시간이 있었던 만큼 애초에 지불 능력이 있었는지와 계약을 성사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여부가 실질적인 갈림길이 됐다는 얘기다.
현장에서는 가계약 단계에서 매수 결정을 내린 수요자들이 자금 조달 계획에 큰 차질을 겪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식 계약 전 규제 적용일을 넘기며 대출 한도에 막히는 경우 매수인이 계약을 철회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계약금 일부를 날리는 가계약 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계약금 일부를 선지급한 수요자 입장에서는 하루 차이로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을 잃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새로 도입한 기준이 아니라 그간 유지돼 온 가계부채 대책 및 대출 관련 정책 원칙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가계약은 말 그대로 정식 계약이 아니기에 법적으로 계약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가계약을 예외로 인정하면 구두계약이나 허위 주장 등으로 이어져 제도 운영에 큰 혼란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규제로 줄어드는 대출 가능 금액은 상당하다. 부동산R114의 수도권 아파트 시세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18개 구에서 기존보다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규제지역인 강남3구와 용산구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 그 외 지역은 70%가 적용돼 차주의 소득에 따라 6억원 이상 대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지역과 무관하게 주담대 한도가 6억원으로 일괄 제한된다.
영향을 받는 가구는 서울 내 임대아파트를 제외한 전체 아파트 재고(171만7384가구)의 74%에 달하는 127만6257가구에 이른다. 특히 평균 매매가가 25억원 안팎인 강남권에서는 기존에 대출로 잔금을 조달하던 실수요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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