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통령 vs Fed 의장 금리전쟁 재점화
경제 흔드는 정치 논란으로 번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금리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1기 행정부 시절에도 금리 인하를 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정책 독립성을 내세운 파월 의장이 충돌을 빚었던 데 이어 다시 '금리 전쟁'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트럼프의 파월 공개 비난은 통화정책을 정치적 무기로 바꿔놓았고, 이는 경제 신뢰성의 핵심인 Fed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지적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의 금리 전쟁은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균형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Fed의 독립성이 무너지고 통화정책이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할 경우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작아지고 자산시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기 부양' vs '물가 안정'…1기부터 되풀이되는 금리 공방
◇'경기 부양' vs '물가 안정'… 1기부터 되풀이되는 금리 공방=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의 금리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인 2017년 11월 파월을 Fed 의장으로 임명하며 자신의 경제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둘의 관계는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금리 인하 재촉에도 파월 의장은 경기 과열 및 자산 시장 버블을 우려해 신중한 행보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물가 안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겼던 파월 의장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격분한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향해 "멍청이" "우리 경제 유일한 문제는 Fed"라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으며 해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Fed 의장은 임기 중 정치적 이유로 해임하는 것이 불가능해 성사되지 못했다. 자신이 임명한 Fed 의장에게 직접적으로 사퇴를 강요한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트럼프 '파월 압박' 재점화…후임 조기 지명설까지
2기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올 들어 다시 금리 인하를 촉구하며 파월 의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 탓에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통화정책을 통해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연임에 성공한 파월 의장은 올해 1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까지 4회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부터 금리 인하를 거듭 압박하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왜 그렇게 머뭇거리는지 모르겠다"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직접적인 대응을 피한 채 "경제 지표는 긍정적이지만 물가와 고용 흐름을 충분히 확인해야 하며 시기상조의 인하는 피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고수했다.
2월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수위를 높여 "파월은 내가 본 사람 중 최악이며, 미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직격했고 파월 의장은 "물가 둔화는 환영할 만하지만 관세 등 새로운 리스크 요인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통화정책 독립성을 강조했다.
지난 3월에도 파월 의장을 향한 금리 인하 압박은 지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이 안 되면 내가 직접 금리를 내릴 사람을 고르겠다"며 노골적인 인사 개입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정책 변경에는 명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며 자산 시장 안정성과 실물경제 간 균형이 중요하다"고 맞섰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Fed는 이미 금리를 2~3번은 올렸을 것"이라며 자신이 금리 동결을 막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파월 의장은 "대통령의 발언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법정 목표에 집중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연이은 금리 인하 압박에도 파월 의장이 꿈쩍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 후임을 조기 지명하겠다며 그를 더욱 압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을 기다리지 않고 이르면 올해 9~10월 후임 의장을 조기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후임으로는 케빈 워시 전 Fed 이사,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베선트 장관은 한술 더 떠 "섀도(예비) Fed 의장을 미리 지정해 시장에 방향을 제시하자"는 아이디어를 공식 언론에서 밝히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분석가들이 이렇게 지명된 후임자가 사실상의 '그림자 Fed 의장' 역할을 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조될 경우 적절한 통화정책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시장 전문가들이 조기 지명된 후임자가 사실상 '그림자 Fed 의장'처럼 되면 파월의 정책적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조될 경우 이러한 정치적 개입은 시장의 인플레이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Fed 흔들기'…달러 가치 3년 만에 최저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지명설'은 시장에 'Fed가 결국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곧바로 미 달러화 약세로 이어졌다. 유로화·엔화 등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25일 한때 97선까지 떨어져 202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10%가량 떨어진 상태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진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가 차기 의장 인사를 앞당긴다는 점은 Fed의 독립성보다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신호로 읽히며 조기 인하 기대감을 부추겼다"고 풀이했다.
시카고선물거래소(CME) 패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이달 금리 인하 가능성을 20%로 반영 중이며 일주일 전(18.6%)보다 약간 뛴 수치다. 9월까지 인하 확률은 75.9%에 이르며 인하 기대감을 높여 반영했다.
이처럼 WSJ 보도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가운데 백악관은 이튿날인 같은 달 26일 후임 결정이 임박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백악관이 "대통령은 마음을 바꿀 권리가 있지만 Fed 의장 지명 결정이 임박한 건 아니다"면서 "대통령은 차기 Fed 의장 후보로 많은 좋은 선택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독립성 신뢰성 논란에 자산시장 혼조…"신뢰 잃으면 자금 이탈"
두 사람의 신경전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Fed의 독립성과 정책 신뢰성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나아가 자산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며 '정치가 경제를 흔드는' 사례가 되고 있다. WSJ는 "결국 이번 파월과 트럼프 간 갈등은 단순한 금리 방향성 논쟁을 넘어 Fed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미국 금융시스템의 핵심 원칙을 다시금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고 했다.
Fed의 정책 방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과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FP마켓의 애런 힐 수석전략가는 "트럼프가 정치적 목적에 맞는 의장을 임명하려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 Fed의 '비정치성'이라는 핵심 자산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Fed에 저금리를 압박한 결과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던 선례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충돌을 넘어 통화정책의 정치화라는 위험 신호라고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현실화되고 Fed의 독립성이 약화된다면 향후 시장은 정책 결정의 객관성과 예측 가능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일대 재정정책 연구소의 케빈 월리스 교수는 "금리 결정이 경제지표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면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기준금리 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도 도전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레이드네이션의 데이비드 모리슨은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정치화된 금리압박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며 "이는 미국 국채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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