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운명 좌우 '반도체 퀄 테스트'
유명 고객사 품질검증 통과하며
'파트너' 수식어…주가 고공행진
실패 땐 기술력 의심, 과도기 겪어
기능-제품 기능 수행 확인 단계
성능-완제품과 호환성 '최대승부처'
신뢰-기술유출 방지, 특허분쟁 빈번
파운드리 기업 통과 더 어려워
TSMC 경우 장비 성능 적합해도
고객사 전부 동의해야 통과
AI반도체 수요↑, HBM 6세대 경쟁
SK하이닉스·마이크론·삼성 연말승부
퀄 테스트 본격화, 복잡·세밀해질듯
"퀄 나왔습니다."
28일 독자 여러분이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전 세계 수십 개 반도체 기업들이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제품을 고객사에 공급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진입장벽, '퀄 테스트(품질 검증)'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퀄 테스트는 제조 과정에서 부품 등의 신뢰성을 시험해 품질 인증 상태를 달성하는 테스트를 말한다. 이 단어는 본래 모든 산업 현장에서 통용됐다.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기업이든 공급사에 대한 퀄 테스트를 한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기업들의 퀄 테스트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퀄 테스트가 반도체만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진 경향이 있다. 실제 반도체 퀄 테스트는 최근 들어 타 분야에 비해 더 복잡해지고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AI) 시장의 개화와 함께 AI 구동에 쓰이는 반도체들에 대한 퀄 테스트가 늘었고 그 과정도 세밀해진 탓이다. 퀄 테스트는 기업 하나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유명 고객사의 퀄 테스트를 통과하는 순간, 그 기업은 해당 고객사의 '파트너'란 수식어를 얻으며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친다. 그 반대의 경우 기업은 기술력에 대한 의심을 받고 전체 사업 방향을 재조정해야 하는 과도기를 겪게 된다.
방식도, 통과확률도 천차만별
퀄 테스트는 기업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업계 표준처럼 여겨지는 공통된 방식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퀄 테스트는 우선 공급사와 고객사가 계획을 수립하고 테스트에 필요한 시제품을 준비한다. 그다음부턴 본격적인 테스트 절차에 돌입한다.
테스트는 기능, 성능, 신뢰성 등을 본다. 기능은 말 그대로 해당 제품이 제대로 제 기능을 수행하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이후 성능을 본다. 이때는 고객사가 만들고자 하는 완제품과의 호환성을 주로 다룬다.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으로부터 HBM을 받아서 자사의 최첨단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해본 후 서로 잘 호환되며 GPU 칩이 잘 구동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이 단계가 퀄 테스트의 최대 승부처, 고비처라고 말한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호환이 불가능하면 고객사에 납품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이후에는 신뢰도를 본다. 해당 제품에 적용된 기술과 공급사를 신뢰할 수 있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가령 A 공급사의 제품에 대한 퀄 테스트를 승인해줘서 A사의 제품을 납품받게 된 이후 A사를 통해 자사의 첨단 기술이 유출되거나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로 보면 된다. 이 단계에선 '특허 분쟁'이 걸림돌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공급사의 제품이 다른 경쟁사의 제품과 만드는 방법이나 디자인 등이 유사해 특허 소송이 제기된 상태에서 퀄 테스트를 받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고객사들에 따라선 특허 분쟁을 사유로 퀄 테스트에서 탈락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테스트가 모두 끝나면 결과를 검증하고 고객사는 공급사에 잘못된 부분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시정 후에는 재시험이 이뤄진다. 재시험은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제품이 완벽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평가되면 그 때 테스트를 통과, 인증을 최종적으로 받게 된다.
"TSMC 등 파운드리는 더 어려워"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 AMD 등 'AI 칩 메이커' 회사들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의 퀄 테스트가 통과하기 더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파운드리는 사업 특성상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의 설명을 요약하면 세계 파운드리 1위 TSMC(대만)의 경우 칩 생산 공정에 필요한 장비 하나를 다른 공급사의 제품으로 바꾸려 하면 칩 생산 주문을 넣은 고객사들 하나하나에 전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퀄 테스트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파운드리의 퀄 테스트는 장비의 성능이 회사의 공정에 적합하다고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고객사가 하나라도 이 장비를 원치 않으면 통과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에선 다른 어떤 퀄 테스트보다 파운드리 퀄 테스트를 통과했을 때 느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1.4㎚(나노미터·1억분의 1m)에 이르는 초미세 공정을 쓰는 TSMC의 퀄 테스트를 통과해 장비를 납품하는 건 기념비적인 일에 가깝다. 그에 걸맞는 기술력이 없인 할 수 없는 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더 복잡해질 퀄 테스트…HBM 주목
퀄 테스트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활약이 컸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으로부터 HBM을 받아 진행하는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 소식이 널리 회자되면서 퀄 테스트에 대한 주목도도 올라갔다.
HBM에 대한 퀄 테스트는 앞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HBM이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가운데 여전히 가장 뜨거운 이슈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주름잡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최근 시가총액 200조(202조7487억원)를 돌파했고 마이크론은 올해 3분기(2~5월)에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HBM 시장이 여전히 호황이란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HBM은 이제 6세대인 HBM4로 경쟁이 넘어간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샘플을 고객사들에 공급하고 연내 양산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도 고객사들로부터 이뤄지고 있는 5세대 HBM3E에 대한 퀄 테스트에서 조금씩 진전을 보이며 HBM4 시장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정면승부는 올 연말에 시작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 뒤에는 HBM4E가 기다린다. 그에 따라 수반되는 여러 퀄 테스트들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과정은 이전보다 세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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