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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생명의 숨소리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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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하는 해녀들의 가쁜 숨소리
삼국사기 등장 제주해녀 유래 1500년 이상
2016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공동체 의식·지속가능 가치 등 인정
해녀인구 급감…수입 증대 위한 상생안 필요

해녀들이 물질할 때는 독특한 소리가 난다. 흡사 휘파람처럼 들리는 '숨비소리'다. 1분 이상 숨을 참았다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면서 폐 속의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일반인에게는 이 소리가 비슷하게 들리지만, 해녀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어머니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징표이자 해녀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뱉는 생명의 숨소리다.


[초동시각] 생명의 숨소리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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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유래는 1500년이 넘는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503년)에 "가(珂·전복에서 나온 진주)는 섭라(涉羅·제주의 또 다른 이름)에서 생산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전부터 해녀처럼 자맥질(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는 짓)하며 진상품을 바치는 이들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중기까지는 남자들이 깊은 바다에서 전복과 소라 등 해산물을 따고, 여자들은 얕은 물에서 미역이나 해조류를 채취하는 분업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본주(本州)에 공물로 바쳐야 하는 전복의 수가 기하급수로 늘자 고된 노역을 견디지 못한 남성들이 뭍으로 도망쳤고, 이들 몫이 여성에게 돌아갔다.


해녀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숙명을 받아들였다. 특별한 기술이나 안전 장비 없이 바다에 내던져진 이들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집단으로 물질하며 서로의 안위를 살피거나, 돌담을 쌓아 불을 피우고 휴식하는 불턱을 만들어 위험을 공유했다. '욕심을 경계하고 필요한 만큼, 오로지 숨이 닿는 데까지만 채집한다'는 해녀의 철칙도 전수했다.


그래서 해녀를 상징하는 단어는 강인한 어머니다. 바다를 보물 삼아 가족들을 위해 헌신한 그들의 삶은 서적과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 등에서 숭고한 희생으로 묘사된다. 2016년에는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고문헌을 통해 유래를 찾을 수 있다는 점, 공동체 의식과 독특한 정체성,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지속가능성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23년에는 '제주해녀어업'이 유엔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 지정·운영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지정됐다.

해녀 이미지컷. K플러스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해녀 이미지컷. K플러스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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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10주년이 되지만 해녀 문화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1970년 1만4000명이 넘었던 도내 해녀 인구는 지난해 2623명으로 줄었다. 이마저도 50년 이상 활동한 70세 이상이 1594명(60.8%)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됐다. 고된 노동에 비해 벌이가 적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해 신규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다.


해녀들은 연중 물질할 수 있는 기간이 평균 90일도 되지 않아 감귤 재배나 밭농사, 나물 채취 등을 돕고 수입을 충당한다. 해외에서는 이들의 삶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지만 정작 해녀들은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삶이라며 부끄러워한다.


이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은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다. 도내 의존도가 높은 해녀들의 수확물이 더 많이 소비될 수 있는 판로 확보가 중요하다. 최근 신세계 백화점은 주요 매장 식품관에서 제주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과 이를 활용한 조리식품을 판매하는 '해녀의 신세계'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시장 등 영세상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형 유통 채널에 공휴일 의무휴업을 강제하는 법안보다 스토리가 담긴 이 같은 아이디어가 상생에 효과적일 수 있다. 경쟁적으로 신선식품을 강화하는 온·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김흥순 유통경제부 차장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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