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타트업 기대 속 수요시장 확대 과제
기회·자원 배분의 무게추 中企로 옮겨야
지난 23일, 이재명 정부의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된 후 유난히 들썩인 곳은 벤처·스타트업계다. 네이버가 NHN 시절부터 국내 대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로 성장하기까지, 굵직굵직한 사업을 총괄했던 한성숙 후보자의 이력 때문이다. 정치인·관료 출신 일색이던 그간의 관행을 깨고 나온 첫 기업인 출신 장관 후보자인 데다, 플랫폼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국내 AI 스타트업 양성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이 대통령이 공약했던 '국민펀드 조성' '100조원 첨단산업 투자' 등 정부 예산 확대도 힘을 받을 전망이다. 자금 여력이 부족해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자원 확보에 애를 먹었던 신생 AI 기업의 고충도 일정 부분 완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이렇듯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통계수치 한 가지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AI 실태조사 결과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현재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곳은 5.3%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들 기업 중 83.7%는 '향후에도 AI를 도입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주된 원인으로 '우리 사업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80.7%)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이 통계의 함의는 겉으로 드러난 숫자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국내 산업 구조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9.9%에 달한다. 이들 기업 대부분이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 않다면, 더군다나 향후에도 도입할 의사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AI 스타트업이 배출된다고 해도 적당한 판매처를 찾지 못해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AI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데도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수요시장이 제한적이라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한 AI 스타트업 대표의 하소연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국내 중소기업은 왜 아직도 AI 도입을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받아들일까. 중소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AI를 도입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당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운영되며, 생산계획·납기일정 등의 운영 결정권 역시 대기업이 쥐고 있는 현 산업 구조에서, 중소기업이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율성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AI를 도입한다고 한들 중소기업이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첫 기업인 출신 장관에게 거는 기대도 크지만, 중기부 설립 본연의 취지를 잊지 말아야 함은 이 때문이다. 단시간에 많은 것을 바꾸는 건 비현실적이고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 대기업에 집중된 기회와 자원의 배분 구조를 중소·중견기업 쪽으로 조금씩 조정해 산업 전반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작업이 선행될 때 'AI 3대 강국'도 실현될 수 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