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뚝 끊긴 가로수길
상가 10개 중 4개는 '텅'
1분기 상가 공실률 40%↑
활기 찾은 압구정로데오
죽다 살아난 핫플레이스
'임대 문의' '통임대' '깔세'
지난 24일 찾은 가로수길은 빈 상가가 즐비했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건물에는 한때 올리브영과 투썸플레이스가 입점해 있었다. 지금은 1층 매장 간판이 있던 자국이 선명했다.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의 회장과 유명 연예인 강호동씨도 이곳에 건물을 샀다가 팔고 떠났다. 쇼핑객과 유행을 선도하던 젊은이들이 넘치던 가로수길의 현주소다.
코로나19 영향·온라인 쇼핑 발달로 발길 끊긴 가로수길
미용실을 찾은 20대 여성 김모씨는 "코로나19 이후로 가로수길이 죽어가는 게 느껴졌다"면서 "2023년부터는 정말 눈에 띄게 공실이 많아졌고, 유명 브랜드도 거의 다 빠졌다"고 했다.
가로수길은 요즘 부동산 유튜버들의 단골 '임장' 장소다. 이들은 '공실 지옥' 탐방을 하러 온다. 부동산 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올 1분기 가로수길 상권의 공실률은 41.6%. 상가의 절반 가까이 비어 있는 셈이다. 높은 공실률에도 임대료가 오르는 기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임대료 통계를 보면 신사역 인근 집합상가, 중대형상가, 소규모상가의 임대료는 2024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증가했다.
수요가 줄어도 임대료는 쉬 내려가지 않고, 신규 임차인의 진입을 막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18년 애플이 이곳에 애플스토어를 내면서 20년치 임대료 600억원을 내자 인근 건물 임대료도 덩달아 치솟았는데 그 거품이 지금 급격히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가로수길은 한때 외국인, 패션 인플루언서, 트렌드에 민감한 2030의 성지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국인 발길이 끊겼다. 여기에 온라인 쇼핑 트렌드가 겹쳐 직격탄을 맞았다. 이 지역의 공인중개사는 "안 그래도 임대료가 너무 높고, 겹치는 업종도 많다"며 "최근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의료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나 근처 세로수길로 흘러 들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는 "가로수길은 평당 임대료가 30만원을 넘어 서울에서도 비싼 편인데, 비싼 권리금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신규 진입은 불가능"이라고 했다.
전문가는 높은 임대료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물론 상권이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점도 문제라고 했다. 권대중 서강대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임대료가 급등하고, 사람들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을 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공실이 많아졌다"며 "임대료는 건물 가격과도 연동돼 있기 때문에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사람들이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거리로 거듭나야 한다"며 "상인 혼자 힘으로는 어렵고, 상가번영회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젊은이들 핫플로 돌아온 압구정로데오·명동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인근 한 베이커리 카페. 이곳은 이른 오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외국인들로 붐볐다. 관광객들은 카페 입장을 기다리며 근처 플래그십 스토어와 생활용품점을 구경하기도 했다. 홍콩 관광객 제이슨씨(29)는 "브랜드가 다양해서 쇼핑하기 좋다"며 "인스타그램에 많이 뜬 베이커리카페에 가기 전에 운동복을 구매했다"고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 가로수길이 '공실 지옥' 상황에 신음하고 있지만,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활기를 되찾으며 젊은이들의 핫플이 돼 있다. 압구정로데오도 가로수길처럼 코로나19 이후 공실과 방문객 급감으로 신음했다.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 '압구정 로데오는 끝났다'고 하던 게 불과 몇해 전이다. 그런데 요즘 압구정과 도산대로 일대에 형성된 패션 상점들에는 외국인, 내국인 가리지 않고 인파가 몰려든다. 극적인 변화다.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 매장 입구에서 입장을 기다리던 싱가포르 관광객 엘라씨(14)는 "한국에 도착해 첫 관광지로 이곳에 왔다"며 "언니가 K-POP에 관심이 많아 제니가 쓴 선글라스를 구경하러 왔다"고 했다.
압구정 로데오에는 패션 플래그십 스토어말고도 다이닝 음식점, 술집도 많다. 라운지나 펍에서 새벽까지 놀 수 있다는 점도 젊은 층의 발길을 붙잡는 요인이다. 임희진씨(40)는 "도산공원 일대에는 핫한 브랜드도 많고, 빈 가게도 별로 없어 걸어다니면서 가게 구경을 하는 즐거움도 있다"며 "음식점이나 카페도 분위기가 깔끔하고 내공이 깊어 내 안목도 따라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압구정, 도산대로 일대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0%다. 2025년 1분기 도산대로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1㎡당 5만5760원, 소규모 상가는 1㎡당 5만4680원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올랐다. 압구정 중대형 상가 임대료도 1㎡당 5만3940원, 소규모 상가는 1㎡당 5만8380원으로 지난해보다 올랐다.
임대문의, 상가 공실 등의 문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거리에는 새로 들어설 상가건물을 신축하는 공사 소음이 가득했다. 공인중개사 유모씨는 "대형 브랜드를 중심으로 신흥 메이커도 들어오는 편이고, 단기보다는 2~5년 장기 계약이 이뤄진다"며 "공인중개사 사무소 근처에서도 향수 매장 입점을 위해 공사 중"이라고 했다.
서울 명동 상권도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회복했다. K컬처 열풍을 타고 각종 액세서리, K팝 굿즈, 한국 패션 브랜드 옷을 사려는 외국인들이 명동을 찾으면서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1분기 리테일 시장 보고서'에서 올 1분기 명동의 공실률은 5.2%로 나타나 전년 동기보다 2.4%p 줄었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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