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기반 중진료권, 지역주민 생활권과 달라
필수의료 정책은 의료원 중심이나 환자들은 민간병원 찾아
이재명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약속한 가운데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실정에 맞는 필수의료 계획을 직접 수립·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가 설정한 중진료권 체계가 실제 의료 이용 흐름이나 생활권과 맞지 않아 의료 공백과 자원 배치에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23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중진료권 역할과 거버넌스 토론회'에서 이건세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우리나라 지역의료가 붕괴한 원인 중 하나는 의료기관 간 협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라며 "현행 진료권 설정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지역 실정에 맞는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진료권이란 각 지역 주민이 일상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생활 권역을 의미한다. 지역 간 의료격차를 파악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우리나라는 현재 시·군·구 단위의 중진료권 70개, 시·도 단위의 대진료권(권역) 11개가 있다.
하지만 이런 중진료권이 실제 주민들의 의료 이용 행태 및 병원 접근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경기 김포와 일산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같은 진료권으로 묶여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중진료권이 주민들이 실제 이용하는 의료기관이나 교통, 문화, 생활권이 아니라 행정 구획 기반으로 설정돼 비현실적"이라며 "특히 필수의료 계획을 수립하는 권한이 대부분 광역지자체에 있어 기초지자체가 실행 주체인데도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지역필수의료 정책이 의료원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대부분의 환자가 이용하는 지역 민간 의료기관들과 협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 교수는 "일례로 순천 내 민간 의료기관에 방문하는 환자 절반이 고흥, 여수, 광양 등 타지역에서 방문하고 있어 이 지역 필수의료는 민간병원들이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인력, 지원 등이 부족한 상태에서 환자들을 서로 미루고 있는데, 만일 순천의 민간병원들이 필수의료 환자들을 담당하지 않으면 권역 의료기관인 전남대병원도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기초자치단체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진료권 기반의 필수의료 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민수 울산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료인력 배치 불균형은 다른 나라도 다 겪는 문제지만 우리나라는 지역 근무 의사들에게 보조금을 주거나 정주 여건을 개선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옥 교수는 "지역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많은 전문가 위원회가 이미 설립돼 있지만 권한이 없어 얘기할 내용이 없는 상황"이라며 "공공보건의료위원회 등 중진료권 단위의 위원회가 설치된다면 병상 관리 등 지역 내 공공보건의료 문제를 심의·의결하는 권한과 예산 집행 등도 따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역필수의료 강화 방안으로 지역의사제 도입, 특수목적 의과대학 설립, 공공보건의료기금 설치 등을 주문했다.
정부도 중진료권 단위의 협력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며 향후 정책 설계에 이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조승아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진료권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므로 의료기관이 새로 생기거나 도로가 개통되면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며 "다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하면 현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만큼 지역 간 밸런스(균형)를 어떻게 맞춰 지역완결적인 의료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윤 의원은 "어디에 환자가 있고, 어디에 병원이 부족한지 모른다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제도를 실행해도 의료정책의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진료권을 기준으로 의료 수요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공급과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만 필수의료 공백을 실질적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단독] "연봉 2억 준다는데 가야죠"…공무원 옷 벗고 쿠팡 가는 기재부 팀장](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93/2025062511170321293_1750817823.jp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