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지원금이 불러올 인플레이션 악순환
영국·스위스가 기본소득을 포기한 이유
새 정부가 2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발표하며 소비 진작 의지를 명확히 했다. 금액 차등은 있지만 '보편적 복지 혜택'이라는 정책 기조는 동일하다. 기본소득 공약까지 고려하면 향후 재정 지출 규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내수 활성화를 통한 소상공인 매출 증가와 중소기업, 대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실제 새 정부 출범과 맞물린 이번 '파격 복지정책'은 코스피 3000선 돌파와 함께 한국 경제 회복세의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 로드맵 없는 확장 복지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소규모 일회성 지원금은 현재 물가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기본소득 같은 대규모 상시 복지제도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위험성이 크다.
현금 유입 속도에 비해 생산량 증가가 뒤처지면 수급 불균형이 심화한다. 식당·배달·쇼핑 등 공급 여력이 제한적인 서비스업부터 수요가 집중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지원금으로 치킨 먹기'처럼 즉시 소비로 이어지는 특성상 해당 업종들은 수요 급증에 따른 가격 인상을 단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오르면 실질 구매력은 다시 감소하고 복지금의 체감 효과는 희석된다. 이어지는 '추가 지원 요구'는 물가와 복지가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 구조를 만든다. 과거 산후조리원 지원금 도입 시 업계가 지원금 수준만큼 가격을 인상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통화정책과 조율…해외사례가 주는 교훈
정부는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소비 확대에 상응하는 생산성 향상과 인프라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행과 긴밀히 협조해 금리 조정이나 유동성 흡수를 통한 물가 안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전문가들의 정밀한 분석과 예측에 기반한 매우 섬세한 정책 조율을 요구하는 과제다.
현재까지는 확장적 복지 정책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장기적 경제 파급효과에 대한 체계적 대응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영국과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 시도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위스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됐고, 영국은 소규모 시범사업에 그치며 결국 선별적 지원 강화와 기업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두 국가 모두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젊은 층이 '노력을 통한 성공'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잃고 기본소득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역시 이 같은 부작용을 피하려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섬세하고 장기적인 계획하에 신중한 복지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노동시장의 활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노력하는 자가 더 잘 살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는 복지 설계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성숙한 국민 의식도 요구된다. 당장의 지원금 혜택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재원 조달 방식과 미래 부담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오늘의 지원금이 미래 세대의 국가채무가 되거나 통화가치 하락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이런 책임 의식을 갖고 실질적인 생산성과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소비와 투자를 선택할 때, 복지정책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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