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은 넘치는데 사람 못 뽑는 현실
'근로시간 족쇄'에 중소기업 비명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공약에 우려 커져
"영세할수록 근로시간 규제 제약 많아"
[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①'백년가게'도 못 버티는 근로규제
[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②경직된 근로규제, 외려 '워라밸' 흔든다
[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③노사가 협의해도 형사처벌, 이런 나라는 없다
[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④엎친데 덮칠 주4.5일제, 大-中企 격차만 키울 수도
[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⑤"산업의 뼈대인 中企 일자리, 유연·자율화로 지켜야"
지난달 28일에 찾아간 대전 동구의 한 자동차 정비소는 이른 오전부터 몰려드는 차들로 북적였다. 리프트에 올라갈 차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데 좀처럼 작업에 속도가 붙질 않는 모습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탓에 바닥에는 오일 박스와 부품 상자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렇게 찾는 이가 많은 이 정비소를 지키는 작업자는 단 두 명.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문을 열지만, 인력을 더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일감은 쌓이는데도 직원을 더 쓰지 못하는 이곳의 현실은 영세 중소기업을 옥죄는 근로시간 규제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성호(가명) 대표는 이렇게 토로했다. 이 정비소는 김 대표의 부친이 25년 전 창업한 지역 대표 자동차 정비 전문 기업이다. 정부가 '백년가게'로 선정할 만큼 지역 사회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전기료나 부품 단가는 계속 오르는데 정비비는 그대로다. 물가도 못 따라가는데 법은 더 조이기만 하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는 법이 외면한 정비업 특유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인건비 구조가 잘 담겨있다. 자동차 정비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계가 아닌 인력이 대부분의 작업을 처리한다. 김 대표는 "하루 8시간, 주 5일만으로는 이 업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했다. 주 52시간제는 이 같은 현장 사정이나 업종 특성을 도외시한 채 법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부터 먼저 제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맨아워(노동생산성)가 선진국보다 낮은데, 이를 보완할 유일한 수단인 노동시간마저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정비소는 고육지책으로 '5인 이하'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선 사업을 유지하기 힘든데 증가하는 업무량을 감당하기 위해 직원을 더 뽑았다가는 주 52시간 적용으로 도리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불 보는 듯 뻔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근근이 버티는 것도 새 정부가 공약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현실이 될 경우 선택지에서 사라진다. 김 대표는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우리 같은 사업장도 모두 대상에 든다"며 "사람은 없고 일은 쌓이는데, 시킬 수도 뽑을 수도 없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주 52시간제 확대를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84.7%, 근로자의 30% 이상이 해당한다. 정부는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중소기업계는 현실을 외면한 일괄 확대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제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우선 적용됐고, 이후 2020년 300인 미만, 2021년 50인 미만으로 확대됐다. 올해부터는 계도기간이 종료돼 3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전면 시행됐다. 중소기업에도 이 규제가 적용된 지 5년이 지난 가운데 중소기업계 곳곳에서 파열음이 솟구친다. 자동차 정비업과 같이 인건비 비중이 높고 숙련인력 확보가 어려운 업종일수록 일률적인 규제 적용의 타격이 크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의 39.6%가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인력난을 가장 큰 애로로 꼽는다.
IT 기반 스타트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AI) 기반 채용 스타트업 웨이플의 이인규 대표는 "직원 수가 5명을 넘기면 각종 법적 규정이 적용되기 시작한다"면서 "인재를 충원하고 싶어도 고용 결정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처럼 유연한 인력 운영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성장을 위한 인사 전략 수립에 근로시간 규제가 결정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아직도 대면 위주의 업무 구조에 놓여 있다"며 "특히 제조업체나 IT 유지보수 업체는 원청 일정에 맞춰야 하기에 근무 조정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벤처기업협회의 최근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41.1%는 현재 주 52시간제 준수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들 기업이 꼽은 주 52시간제로 인한 가장 큰 애로는 납기일 준수, 수주 포기 등 '생산성 저하 및 운영 차질(42.5%)'이었다. 이어 구인난, 인건비 부담 등 '인력문제(30.1%)', 설비투자, 관리비용 증가 등 '비용 부담(17.1%)'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가 누적돼 온 근본적인 이유는 업종과 규모에 관계없이 같은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업종별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 요건을 완화하고, 정산 단위도 월·분기로 확대하는 유연한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은 원청 발주에 따라 수주가 갑자기 몰릴 수 있는데, 납기를 맞추려면 단기간 집중 근무가 불가피하다. 월 단위 유연화를 허용해야 실무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며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초과근로 수요가 많아지는데 일이 많은 기업이 더 못 움직이는 제도는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대전=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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