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간다" "적적한 마음도 풀리고"
'외로운' 노인들의 소일거리
과태료 부과된다는 것 잘 몰라
"가엾잖아. 날도 더운데 배고프면 얼마나 힘들겠어."
19일 오후 1시께 서울 노원구의 한 공터. 80대 황모씨가 바닥에 곡식을 뿌리자 비둘기 10여마리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황씨는 비둘기를 보며 "얘들이 많이 먹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한 번 집에서 곡식을 챙겨 나와 비둘기에게 밥을 준다. 황씨는 "비둘기도 매일 보면 정이 간다"며 "적적하고 외로운 마음도 풀린다"고 했다. 기자가 비둘기 먹이 주다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황씨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노년층을 적잖이 볼 수 있다. 대개는 사회적 고립감을 달래기 위한 행동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다음 달부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다 적발되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충분한 홍보와 계도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같은 날 찾은 종로구 탑골공원에도 한 노인이 잔디밭에 모이를 뿌리는 모습이 보였다. 인근 나무, 전봇대에 있던 비둘기 20~30여마리가 모여들었다. 일부 노인은 도시락을 먹고 남은 밥 몇 알을 던져주기도 했다. 비둘기 먹이를 주던 또 다른 노인 서모씨(70대)는 "(비둘기에게) '잘 있었니' 하면서 말을 걸기도 한다"며 "밥을 주면 비둘기만큼은 나를 반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씨 역시 비둘기 먹이 주기에 대한 과태료 부과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비둘기는 2009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도심에 적응하며 개체 수를 늘려온 비둘기가 도심 미관을 해치고 보건위생에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민권익위원회 빅데이터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새똥' 관련 민원 건수는 2019년 171건에서 지난해 643건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올해도 이미 377건 접수됐다.
비둘기 개체 수 증가의 원인은 인간이 주는 먹이가 꼽힌다. 야생 비둘기는 1년에 2~3회 산란하는 반면 도심 비둘기는 많게는 8회까지 번식한다. 환경부는 2022년 12월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공원 등에서 유해야생동물 먹이 주기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일명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법'을 제정, 올해부터 시행했다.
서울시도 다음 달 1일부터 광화문광장과 한강공원, 서울숲 등 총 38곳에서 비둘기 등 유해야생동물에 먹이를 주는 시민에게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1회 적발 시 20만원, 2회 50만원, 3회 100만원이다. 반려동물 배설물 방치 및 개 목줄 미착용의 경우 과태료가 최대 50만원, 담배꽁초 무단투기 시 과태료가 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빵조각이나 밥알을 던지는 등 경미한 행위까지 무조건 단속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쌀 포대 등으로 상습적으로 대량의 먹이를 제공해 도심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겨냥한 조치"라고 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태료 부과에 앞서 공무원들이 당분간 직접 현장에 나가 먹이를 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등 계도 활동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다"며 "노인들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외로움의 표현일 수 있는 만큼 정서적 접근도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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