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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김혜연의 AHA]연극은 문명이 리셋돼도 가능한 몇 안 되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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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연극·뮤지컬 연출가 이대웅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예술창작 분야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사람'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공학자와 예술인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매월 한 차례씩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가 예술창작인과 대담하거나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코너 제목에 들어가는 'AHA'는 'AI, Human & Art'를 뜻합니다. 생성형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뜨겁게 탐구하는 김대식 교수, 생성형 AI와 무용을 과감하게 접목하고 있는 김혜연 안무가를 통해 AI와 사람, 그리고 예술이라는 묵직한 화두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김대식·김혜연의 AHA] ?연극·뮤지컬 연출가 이대웅
고전 무대화로 미래를 그리는 연출가
AI 시대, 연극은 여전히 인간을 연출하는가

이대웅은 극단 '여행자'의 상임 연출로, 연극을 기반으로 뮤지컬, 무용, 음악극 등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고전 문학과 클래식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의 감각과 기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하는 무대를 만들어낸다.


공연 예술이란 언제나 상상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믿으며, 관객과 창작자 모두가 그 마주침의 힘을 경험하길 바란다. 50여 편의 작품에 참여하며 축적한 감각과 미학은 <베로나의 두 신사>, , <추남, 미녀>와 같은 작품들에서 유감없이 발휘돼왔다.

뮤지컬 <렛미플라이>를 통해 새로운 무대 언어를 탐색했고, 최근 재공연을 올린 연극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 이어 뮤지컬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등을 통해 연출성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에게 연출이란 결국 '지금,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행위다.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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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님 작품의 공통점은 '문학'과 '클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그런 기반을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아마도 제 어릴 적 환경이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어릴 땐 자전거 하나만 있으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정도로 활동 반경이 넓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동네 도서관에서 책과 클래식 영화들을 만나게 됐어요. 거기서 홀린 듯이 문학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죠. 당시엔 '읽는 이유' 같은 건 몰랐고, 그냥 알고 싶은 게 많았어요.


특히 중학교 2학년쯤에 가게 된 도서관에서는 거의 모든 책을 읽을 정도로 책에 빠져있었어요. 세상이 재미있었고, 궁금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주말마다 영화를 보러 다니던 기억도 커요. 주로 클래식 영화들을 관람했는데 그런 기억들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문학과 클래식이 제 안에 자리 잡아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연출이라는 작업을 하게 됐을 때 초반에는 저만의 색깔을 내야 한다는 조금의 강박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무용하다고 느낀 순간 제가 가장 먼저 마음이 향했던 것이 소설을 무대화하는 것이었어요. 연출가로서 억지로 테마를 정한 게 아니라, 가장 편하고 오래 머물러온 곳에 돌아간 셈이었죠. 그 후로 본격적으로 문학과 접속을 통해 소설을 연극으로 읽는 태도를 계속적으로 만들어 왔어요.


문명이 완전히 리셋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건 결국 '몸'

-책은 혼자 즐기는 매체인데, 연출은 다른 이와 공유하는 일이잖아요. 내밀한 감정을 무대 위로 옮기는 데 대한 고민도 있으셨을까요?

▲맞아요. 처음엔 저도 책이 주는 내밀함이 좋아서, 그 세계를 혼자 품는 것에 익숙했어요. 하지만 연출이라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태도가 바뀌게 되더라고요. 연출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제 생각과 감정을 열고, 다른 예술가들이 저를 통과해 가며 자신의 언어로 작품을 채워가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야 하니까요.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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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 감각을 먼저 열어두고, 이야기든 작업이든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창작 대본을 쓰는 연출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다시 해석해서 무대 위로 옮기는 일을 해요.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저라는 사람을 통과하며 어떻게 변형되고, 어떤 온도로 나오는지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게 중요해졌죠.


무대는 결국 '나'라는 개인의 감각을 세상과 마주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셰익스피어가 "세상은 무대다"라고 말했다면, 저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봐요. 어떤 연극은 무대가 세상보다 더 강력한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거든요.


예전에 말리극장에서 봤던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공연이 딱 그랬어요. 러시아의 메소드 연기 배우들과 영국 최고의 셰익스피어 연출가가 만나서 만든 작품이었는데, 초반 15분은 정말 지루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근데 배우 한 명이 조용히 일어나는 장면부터 그 모든 흐름이 '태풍의 리듬'처럼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순간 무대의 모든 박자, 리듬, 움직임이 하나의 거대한 구조처럼 느껴졌어요. 결국 무대가 세상이 되기도 하고,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 공연에서 강하게 체감했죠. 그 기억은 아직도 제가 연출을 할 때 중요한 기준점처럼 남아 있어요.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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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강조했던 과거 세대 연극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작업들을 하고 계신데요. 연출님께서 생각하시는 '동시대 연극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저는 선배 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겪었던 격동의 정치적 상황이나 급박한 사회 변화를 저희는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잖아요. 그만큼 우리는 훨씬 더 많은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세대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술이 시대를 진단하고 문제를 던지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감각을 섬세하게 재현하고 해석하는 방식도 있다고 봐요. 메시지를 직접 던지는 연극보다는, 무대 위에 다양한 요소들을 충실히 쌓아 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의미가 더 아름답다고 느껴요.


그래서 저는 연극을 '종합 예술'이라고 믿어요. 그 안에는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신체도, 조명도 다 들어가 있어야 하거든요. 특정 메시지에 경도돼서 그 다채로운 구성들이 배제되는 걸 보면 아쉽기도 해요.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지, 출발점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 출발점이 아니다

-고전을 무대에 올릴 때, 시대와 정서의 간극을 어떻게 풀어내시나요? 그리고 AI 세대, 미래 관객에 대한 고민도 있으신가요?

▲맞아요. 클래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지금과 동떨어진 이야기고, 무대에 올리는 순간에는 분명 컨플릭트가 생기죠. 이런 간극 속에서 느끼는 어떤 이야기들을 지금 관객과 매칭시키는 것이 저의 일이기도 해서 '매칭의 태도'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예술이 전 세계적으로 48시간 멈춘다면?' 상상을 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감각을 예술에 기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거든요. 클래식은 그 감각을 되살리는 좋은 텍스트예요. 단, 그것을 지금의 시선과 구조로 다시 설계해야 해요.


그리고 동시에 '과거라서 낯설기 때문에 보고 싶은 욕망'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타임슬립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고전을 지금 무대에 올리는 일은 결국 시간의 겹을 감각적으로 확장하는 일이에요.


또 미래 세대는 아날로그적 경험보다는 AI와 함께 자란 친구들이잖아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에 대한 감각적인 체험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몸, 소리, 눈빛, 호흡 같은 아날로그적 경험이 오히려 더 필요한 시대가 올 거라고 믿어요. 그게 클래식의 역할이기도 하죠.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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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님께서는 AI를 작품에 활용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는 AI를 도구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이걸 써서 요약해줘, 문장 써줘"라는 태도는 어느 순간 저한테 별로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지더라고요. 오히려 AI와도 재미있는 태도로 '관계'를 맺으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만약 글을 써야 하는 경우 '1분 안에 어느 정도 분량으로 요약해줘'라는 식의 일방적이고 단순한 결과값을 도출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관계보다는 다른 학습의 과정을 같이 찾으면서 확장해주고, 때론 단계를 점프시켜주기도 하고, 일이든 공부든 취미든 함께 어떤 분야를 여행해주는 동반자로 본다면 훨씬 유의미한 만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AI와 같이 노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면 이 체험에서 오는 결과값이 클 수 있다는 태도가 많이 공유되면 좋겠어요. 결국 이런 관계 맺음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히 결과를 위한 도구로 마주했을 경우 더 좋은 도구가 나타나면 또 이동할 것이 분명하거든요. 따라서 동반자로써 알고리즘을 확장시켜나가는 방향이라면 저 또한 충분히 AI를 작품에 활용해볼 생각이 있어요.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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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현실적 제약이 없다면, 어떤 무대나 연극을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으신가요?

▲진짜 한 번쯤은 100% 아날로그로 된 무대를 완벽하게 구현해보고 싶어요. 지금처럼 디지털이 주도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리얼한 감각'이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거든요.


저는 르네상스 시기의 실내극장처럼, 무대장치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과 감각으로 작동하는 그런 극장을 새롭게 만들어서 거기서 고전 작품을 올려보고 싶어요. 작품의 주제 또한 한 등장인물의 수련 과정에 따라 무대의 구조 자체가 확장되는 형식으로 말이죠. 배우가 장인이 될수록 무대도 함께 완성되어가는 구조죠.


극장 안에 또 다른 극장을 만들고, 무대와 백스테이지가 투명하게 연결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무대 위에서는 기술과 신체, 인간과 공간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교차하면서 우리의 기원은 어디에서 왔는지 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연극을 꿈꾸는 미래 세대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요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동시에 너무 많은 조건들을 부여받으면서 자라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질문을 던져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명이 완전히 리셋됐다고 가정해볼게요. 전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 세트도 없는 그 상태에서 연극을 하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저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자주 던지곤 해요.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대웅 연출가가 서울 종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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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남아 있지만 도구가 없는 상태, 감각만 남은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몸'이에요. 그걸 깨닫는 순간, 연극이라는 예술의 본질이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지 다시 느끼게 돼요. 저는 연극이 기술이 사라지고도 여전히 가능한 몇 안 되는 예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극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는, 장비나 이론보다도 먼저 '몸의 감각'과 '말하고 싶은 마음'을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고, 오히려 그런 감각이야말로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의 원형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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