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충돌 이후 선박 수백 척 위치 오류 발생
국제 원유 수송 요충지서 전파교란 추정 사고
전문가 “GPS 의존 항해, 위험 커져”
이스라엘이 지난주 이란 공습을 감행한 이후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선박 수백 척이 육지를 항해하거나 원형으로 돌고, 항로가 겹치는 등 비정상적 위치 정보를 표시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관측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리베리아 선적 유조선 '프론트 이글(Front Eagle)'이 15일 밤 호르무즈 해협 인근을 항해하던 중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상으로 수십 마일씩 갑작스럽게 위치가 이동하는 등 비정상적인 항법 신호가 반복적으로 전송됐고 다음 날 새벽 해당 선박은 또 다른 유조선과 충돌해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상 항적이 'GPS 교란(jamming)'의 명백한 징후라고 지적했다고 FT는 전했다. GPS 교란은 현대 전장에서 점점 더 자주 사용되는 수단으로 해상 사고의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중동 지역 선박 안전을 담당하는 다국적 기구인 '합동해사정보센터(JMIC)'는 "극심한 전파 교란이 이란 반다르아바스 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선박들은 레이더 및 시각 항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영국 해상무역운영국(UKMTO) 또한 걸프 지역에서 항법 신호 교란 관련 보고를 다수 접수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분석가들은 이스라엘-이란 간 무력 충돌이 해협 통과 선박의 안전을 위협함에 따라 국제 유가 및 공급망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프론트라인은 사고 직후 "이번 충돌이 지역 갈등과는 무관한 항법 사고"라며 외부 개입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전문가들은 GPS 교란이 충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고 당시 프론트 이글은 마지막 순간 방향을 바꿔 '애덜린(Adalynn)'이라는 원유 운반선과 충돌했다.
캠벨대학 해양사 전문가 살 머코글리아노 교수는 "GPS 또는 자동식별시스템(AIS)이 교란되며 선박의 자동 항법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 텍사스대 GPS 전문가 토드 험프리스 교수 역시 "호르무즈같이 좁은 해협에서는 GPS의 작은 오차만으로도 선박이 위험한 경로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GPS 교란과 스푸핑(신호 조작)이 우크라이나, 발트해, 이스라엘, 인도-파키스탄 국경 등지에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교란을 일으킨 배후를 추적하기 쉽지 않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 이란이 자국 시설에 대한 드론·미사일 정찰을 차단하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FT는 분석했다.
영국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속 토마스 위딩턴은 "교란 신호가 너무 강력해 선박·항공기뿐 아니라 휴대폰까지 영향을 받는다"며 "전 지구 위성항법 시스템(GNSS)에 의존하는 항해 환경에서 이런 행위는 매우 무책임하며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