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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반상(盤上)에 무의미한 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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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의 바둑에도 역사가 녹아 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반전의 묘수, 승리의 결정타도 있지만 아쉬움을 남기는 후회의 한 수도 있다. 대국이 끝나면 반상(盤上)에 놓인 돌은 다른 처지에서 평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종착 지점의 처지가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이분법의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게 있다. 누군가는 승리하고, 패배하겠지만 그 결과에만 집착하면 이야기는 단선적이다. 역사에 비견할 드라마틱한 사연의 숨결을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지나온 길을 제대로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숨겨진 사연의 의미를 품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수담(手談)]반상(盤上)에 무의미한 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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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에 놓인 돌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은 없다.


반상에서 하찮게 여겨지는 어느 돌도 한때는 방벽의 일원으로 활용되거나 회심의 한 수를 가능하게 한 실마리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돌의 기여를 꿰뚫어 볼 줄 알아야 진정한 장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는 승자는 물론이고 패자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자기를 중심으로 사고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잊지 말아야 할 '인연의 순간'을 놓치고 만다.


한 판의 바둑을 복기할 때도 숙고의 시간이 필요한데, 대통령선거의 그것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세상이 대선 결과 그 자체에 매몰돼 환호하고 절망하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수백만 명 아니 수천만 명의 이야기가 녹아든 그 많은 사연을, 그 숨결을 품고자 노력해야 한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을 하게 했는지에 관해….

전국 곳곳에 간절함을 담아 한 표라도 더 보태고자 노력했던, 발이 부르트도록 유권자를 찾아다녔던, 이름 모를 응원군이 있다. 간절함의 의미를 읽어내야 민심의 선택에 담긴 속뜻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역사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는, 진정한 지도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튿날인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마련된 무대를 찾아 당선 수락연설을 마친 뒤 아내 김혜경 여사와 인사하고 있다. 2025.6.4 김현민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튿날인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마련된 무대를 찾아 당선 수락연설을 마친 뒤 아내 김혜경 여사와 인사하고 있다. 2025.6.4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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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사연을 읽어내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둘러 끝내고 싶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담금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심의 사연을 체화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민심의 열망을 실현하는 그날까지 쉽게 좌절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품성이 만들어진다.


관전자는 담금질의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어떤 행동 하나, 말 하나에 집착해 섣불리 단정하고 평가하면 사연의 숨결을 읽어내고자 노력하는 이의 진심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승자도 패자도 그리고 관전자도 대국이 끝난 이후 각자의 새로운 대국에 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어딘가에 놓은 그 돌의 어울림은 씨줄과 날줄로 이어진 또 하나의 소중한 역사 아니겠는가.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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