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ED로 사업구조 전환 나선 LG디스플레이
정부·재계 투자심리 전환 시험대
산업 생태계 반등 마중물 될까
LG디스플레이가 1조2600억원을 파주 사업장에 투자해 차세대 OLED 기술을 고도화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간에서 나온 첫 조원 단위 투자이자, 수년간 수익성 저하로 침체됐던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대규모 설비 투자다. 단순히 한 기업의 전략적 판단을 넘어, 국내 제조업과 전자 부품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LG디스플레이는 17일 이사회를 열고 2027년 6월까지 파주 공장을 중심으로 OLED 설비에 1조26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차세대 OLED 기술의 경쟁력 확보와 프리미엄 제품 생산을 위한 기반 마련이 목적이지만, 이번 투자의 핵심은 '탈LCD' 이후 새로운 성장 축을 OLED로 명확히 전환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에 가깝다.
LG디스플레이는 한때 세계 최대 LCD 생산업체였으나 중국 기업들의 단가 경쟁에 밀려 2020년 이후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LCD 비중을 빠르게 줄였다. 지난해에는 중국 광저우 LCD 공장을 매각하며 탈LCD 기조를 공식화했다. 이후 남은 건 기술 격차를 유지하며 OLED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 확보였다.
이번 파주 투자는 기술 고도화뿐 아니라 생산 효율화와 수율 향상을 병행해 OLED의 원가경쟁력까지 끌어올리려는 포석이다. 특히 대형 OLED 패널뿐 아니라 차량용·IT기기용 중소형 OLED까지 생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기반 마련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 전반의 투자 마중물 될까
산업계가 이번 결정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설비 확충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그간 원가경쟁 압박, 수요 정체,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투자 위축과 고용 축소가 이어져 왔다. 이번 투자로 인해 장비·부품·소재업계의 연쇄 수주가 기대되며, 파주 지역의 고용 및 연관 산업 활성화에도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조원 단위 민간투자라는 점이 상징적이다. 정부는 산업 고도화와 첨단 제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글로벌 불확실성과 고금리 부담 속에 실제 민간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주춤했다. LG디스플레이의 결정은 민간이 먼저 산업 전환에 응답한 사례로 평가되며, 다른 전자·소재·장비 기업들에도 투자 심리 회복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이차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적 조명이 덜했던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의미 있는 대규모 투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며 "이번 결정이 전체 산업계의 고부가 투자 흐름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OLED 성장세 뚜렷…기술 우위 확보가 관건
이번 투자 배경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까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일부 인력을 LG이노텍 등 수익성이 안정된 계열사로 재배치했다. 동시에 OLED와 같이 미래 수익이 기대되는 핵심 기술 분야에는 과감하게 자본을 투입하며 '되는 곳에 확실히 밀어주는' 방식의 사업 재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이번에 단행한 1조2600억원 투자는 그 전략이 실질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OLED 시장은 2023년 약 76조원 규모에서 2028년 1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LCD 시장은 연 1% 내외의 미미한 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측된다. OLED는 대형 TV용뿐 아니라 노트북, 태블릿,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로 수요가 확장 중이다.
하지만 성장세가 뚜렷하다고 해서 수익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OLED는 여전히 제조단가가 높고 공정 기술의 난도가 크기 때문에 수율 확보와 원가 절감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번 투자가 의미를 갖는 것은 단지 수요 대응을 위한 증산이 아니라, 기술 우위와 생산 효율화를 함께 추구하는 구조적 전환의 시작점이라는 점이다. LG디스플레이는 고휘도·저소비전력 OLED, 폼팩터 혁신형 디스플레이 등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부가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반도체·이차전지 등 국가 핵심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있었다. LCD 중심 생산이 중국으로 넘어간 이후 국내 제조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됐고, 이에 따라 산업 생태계도 점차 이탈하는 흐름을 보여 왔다.
이번 파주 투자는 국내 생산기지의 기능을 다시 강화하고, 기술 중심의 제조 생태계를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 역시 디스플레이를 첨단산업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지원 방향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기술 융합이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 디스플레이 기술의 전략적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올해는 반전을 넘어 도약의 해가 될 것"이라며 "LG디스플레이만의 차별화된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의 이번 선택이 단기적 실적 회복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균형과 역동성을 회복시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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