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물 걷어내고 황 성분 조절
AI가 '예비처리 공정' 넘겨받아
현장 데이터 실시간 분석·제어
고숙련자 기술 최고치엔 못미쳐
윤정균 공장장 "학습 진화 중"
포스코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 한쪽에 자리한 예비처리 운전실. 쇳물과 불꽃, 소음과 진동 대신 '정적' 수준의 고요함이 현장을 메우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낯선 전자기기와 현장 연결 모니터가 놓인 운전실 내부는 CCTV 관제실을 연상케 했다. 한 모니터 화면에는 래들(ladle·쇳물을 담는 커다란 그릇)에 담긴 쇳물이 일렁였고, 그 위로 떠 있는 불순물을 스키머(불순물 제거 설비)가 긁어내고 있었다. 스키머는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며 굴착기 같은 궤적을 그렸다. 쇳물과 불순물이 얽힌 복잡한 공정의 긴장감이 모니터 너머에서 전달됐다.
예비처리 공정은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에서 불순물을 걷어내고, 강의 품질을 좌우하는 황(S) 성분을 조절하는 단계다. 여기서는 이 공정을 '배재(排滓)'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동안은 사람이 스키머 조작기가 달린 콘솔에서 일일이 조작해야 했다. 숙련자라도 400번 넘는 반복 조작이 필요한 고난도 작업이다. 작업자 개인의 감(感)이 잡았던 운전대를 지난달부터 인공지능(AI)이 넘겨받았다. 예비처리 운전실이 고요할 수 있었던 이유다.
숙련자 감각 흉내내는 AI, 손실률 낮춘다
AI는 평균적인 작업자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배재 공정을 마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AI가 전(前)배재는 평균 5분30분, 후(後)배재는 10분 만에 일을 끝내는 반면, 일반 작업자들은 각각 6분, 15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정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철(Fe)의 손실률도 2~3% 줄였다. 수치가 적어 보여도 하루 수백 번의 공정이 반복되는 제철소에선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현재 운전실 메인 콘솔에선 AI가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제어 화면에는 쇳물이 담긴 래들의 번호, 쇳물의 성분, 예비처리 설비의 위치와 동작 상태 등이 동적으로 표시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래들을 기울여주는 경동 단계에서는 쇳물이 나오는 타이밍을 AI가 먼저 예측해 예비처리설비가 움직인다"고 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작업 중 화면 위로 '배재율 90%'라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시스템이 즉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스키머의 동작을 멈췄다. AI가 스스로 판단해 후속 공정에 돌입하는 것이다.
다만 현재 AI의 업무 역량은 고숙련자 기술의 최고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배재 설비를 너무 깊이 집어넣으면 쇳물이 딸려나오고, 너무 얇게 넣으면 불순물이 잔류해 쇳물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장 AI는 사람의 감각을 흉내 내기 위해 수천 번의 조작 패턴을 학습하는 형태로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작업자마다 불순물을 긁어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 탓에 그 차이를 데이터로 수렴하고 평균화하는 데 그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메라 화소를 높이고, 스키머 궤적을 기록하며, AI는 서서히 사람처럼 움직이며 스스로 개선하고 있다. 윤정균 공장장은 "완전히 자동화된 공정이란 건 없다"며 "계속해서 학습하고 진화하는 게 자율화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작은 오류도 대형사고 위험…답은 '알고리즘'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단계는 쇳물을 담은 래들을 기울이는 동작이다.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잘못 판단하면 쇳물이 넘쳐 공정 전체가 멈추는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포스코는 화소가 높은 고정밀 카메라와 기울기 각도 데이터를 조합해 '중복 판단 알고리즘'을 구축했다. AI는 현장 데이터를 복수의 경로로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스스로 동작을 멈춘다. 윤 공장장은 "사람이 실수해서 쇳물이 넘치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우리가 AI를 도입한 이유"라고 했다.
콘솔 앞 화면을 보면 설비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가 실시간으로 흐른다. 전로 설비가 예비처리 설비에 '쇳물을 몇분 후에 준비할 것'이라고 알려주면, 예비처리 설비는 대기하고, 스키머는 자동으로 불순물 제거 준비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이 보내는 무전 없이도 가능하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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