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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 세계적 동네사진관 주인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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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인시장에 흑백사진관 차린 30년 경력 사진기자
사진 알아본 고객 요청으로 대학병원에서 전시회 열어

"사진기자는 회사를 그만둬도 먹고 살 걱정 없겠다. 기술이 있으니까..."라는 소리를 초년시절부터 수백 번은 들어왔다. 사진 찍는 것을 하나의 기술로 알고, 사진관을 차리는 일은 기술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쉽게 말하던 시절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지금은 사진을 기술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 국민 아니 세계인이 사진작가인 시대가 되고 나니 그런 이야기는 잦아들었고 수많은 사진관들은 문을 닫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전 현직 사진기자는 줄잡아 천 명은 되지 싶지만, 실제로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사진관을 차린 사람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3년여 전 단 한 명, 내 주변에도 사진기자 출신 사진관 주인이 생겼다.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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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주인 김도형은 30년 넘게 사진기자를 했다. 신문사 내 출판국에서 발행하는 잡지 사진을 찍었다. 'TV가이드'와 '퀸' 같은 유명 잡지에 연예인과 패션모델 사진들을 실었고, '선데이서울'의 폐간을 눈물로 지켜봤다. 그의 사진에 있어 가장 많은 이력을 차지했던 여성지가 모회사에서 독립해 나갈 때 그도 함께 사직하고 잡지사로 합류해서 20년 가까이 사진부장과 광고국장을 겸했다. 그는 천상 사진하는 사람이지 광고 영업까지 하는 일은 참으로 체질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하면서 버텼다. 그도 나이가 들고 50대가 들어서면서 여성지 사진기자로서의 감각도 광고 영업도 예전 같지 않다 생각되었고, 체질에 맞지 않은 일을 견디고 견디다 회사를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차린 것이 사진관인데, 보통 동네 사진관처럼 증명사진을 찍어서 뽑아주진 않는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동네 사진관에서 뽑지 않는다. 시장통 가게 한 칸에 자리한 사진관은 자동현상기도 인화기도 없고 간이 스튜디오 조명 한 세트에 포토샵 잘 돌아가는 컴퓨터 한 대, 포토프린터 한 대가 전부다. 그는 패션 사진과 유명인 사진을 찍었던 경험으로 '전문가적 시선'의 사진이 필요한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사진관은 소박하지만, 사진의 결과물은 잡지에 실리던 유명인들 사진 못지않게 전문가적이다. 살다보면 어디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명함에도 멋진 얼굴사진 한 장 넣을 수도 있다. 그의 사진은 보통 사람들을 근사한 잡지나 브로슈어에 등장하는 고관대작이나 유명인들의 사진 못지않게 만들어준다. 그가 철들고 찍어온 사진이 그런 사진이다. 예술가적 시각으로 찍은 프로필 사진, 가족사진, 기념사진 등을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가질 수 있다.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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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진관을 차리고 시작한 것이 '인스타그램'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 풍경과 스냅 사진을 찍는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풍경사진 찍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월간사진'에 초대되어 사진을 실었다. 그는 늘 바쁘다. 손님이 많아서 바쁜 것 같진 않고, 매일 출근길에 김포, 강화도 등등 서울 외곽을 돌아다니며 풍경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장황한 글과 함께 올리는 것이 오전 일이다. 사진일기 라 할 수 있는 그 '주야장천'한 글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그의 토속적이고 구수한 애드리브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진이라는 구도(求道)의 길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진작에 그는 사진과 어린 시절 시골 생활 경험을 담은 수필집 두 권을 출간한 바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는 '세계적 사진가'라고 자칭한다. 세계적 사진가는 자기 최면을 겸한 응원이고 다짐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그의 해학과 '자뻑'에 매료된 팬들이 온·오프라인에 넘친다. 시작한 지 3년 된 인스타그램(@photoly7) 팔로워가 1만 명이 넘는다. 그중 묵시적으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들은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고, 수시로 연락하고 놀러 오는 사람들만 몇백 명에 달한다. 그런 사진 애호가들 중에 그와 출사 한 번 같이 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출근길 그를 태워서 무작정 서울 외곽으로 나가기도 한다.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야외에서 사진 구도 수업을 한다. 구도(전문 용어로는 프레임이라고 한다)는 사진이 안정돼 보이게 구성하고 배치하는 과정이다. 그에게서 '천기누설' 수준의 현장 강의를 듣고 나면 사진이 몰라보게 달라져 '개안(開眼)'하는 기분이 들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진 한다는 사람들, 스스로 전문가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아마추어들은 누군가를 대가라고 부르면 몰려와 물어뜯는다. 입으로만 사진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넘친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는 그의 자랑과 수다를 즐거워하고 칭송하고, 무엇보다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스스로를 '세계적 사진가'라고 불러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그의 말과 넉살이 지닌 무장해제 기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자칭 세계적 사진가라는 자기 최면과 부단한 노력이 사진을 바꾼 것 같다. 사진이 나날이 새롭고 깊고 궁금해진다.

김도형 인스타그램

김도형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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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가 사진을 찍어서 쌓아놓기만 해서는 의미도 없고 자세도 아니다. 사진은 내보이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언어로서 드러내야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핸드폰 화면에 넘치는 인스타그램 사진도 좋지만, 사진의 본질적 대화 기능은 프린트와 액자로 완성해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인사동 작은 갤러리에서 일주일짜리 사진전을 열었다. '블록버스터'라든가 '세계적 거장' 아니면 누가 요즘 사진전을 보러 가는가. 그런데 그의 사진전엔 관객이 넘쳐났고 관객은 그야말로 '세계적' 규모였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절반 이상 다녀간 듯하다.

통인시장흑백사진관과 사진가 김도형 ⓒ허영한

통인시장흑백사진관과 사진가 김도형 ⓒ허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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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사동 사진전을 본 팬들이 작은 흑백사진을 구입해서 집에다 걸어 놓고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렸던 모양이다. 그분들은 의사 부부였다. 그것을 사진 좋아하는 병원 고위직 인사가 보고 우리 병원에도 좋은 갤러리 못지않은 벽이 있으니 환자와 방문객들이 보고 치유 받을 수 있도록 전시회를 요청해 보자고 했다 한다. 그리해서 경남 양산에 있는 부산대 병원에서 좀 더 큰 사진을 걸고 전시회를 하고 있다. 전시회는 이달(6월) 말 까지다. 통인시장흑백사진관 주인 김씨는 세계를 향해 가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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