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금리 개입 '위험한 유혹'
트럼프의 연준 압박이 던지는 경고
우리나라에 한국은행이 있고 미국에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있듯이, 거의 모든 나라에는 중앙은행이 있다. 중앙은행은 해당 국가의 통화와 통화정책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특히 기준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아주 막강하다.
한 나라의 통화량과 신용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경제성장, 인플레이션, 고용, 금융안정성 등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력한 권한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이 중앙은행을 통제하거나 간섭하고 싶어한다. 특히 선거철이나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을 때는 더욱 심하다.
정치인들이 통화정책에 개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낮은 금리가 경제를 빠르게 부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금리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경제 호황, 고용 증가, 저금리 대출 등으로 인해 유권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
현재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임기 중 그는 본인이 임명한 연준 의장을 비판하며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지난 4월 17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자, 트럼프는 온라인 게시물에서 파월을 "너무 늦고 틀렸다"고 비난하며 그의 해임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통제하려 들 경우 금융시장에서 반발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등 큰 거시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시경제 학파를 떠나서, 금리 저하와 통화량 증가가 장기적으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다. 아마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낼 수 있는 당장의 효과 때문에 정치인들은 통화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단기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로 인한 통화정책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1997년 IMF 사태에는 여러 가지 발발 이유가 있겠으나,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없었다는 점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1997년 IMF 사태의 교훈, 그리고 독립성의 한계
실제 IMF 사태 이전에는 한국은행이 아예 기획재정부 산하에 있었다. 그래서 금리나 통화량 조절과 같은 핵심 거시정책을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고, 정부의 뜻대로 단지 정책을 시행만 하는 기관에 불과했다. 금융구제를 받으면서 IMF 측에서 요구한 다양한 변화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은행의 독립이었다. 이로써 외환위기나 거시경제에 충격이 오더라도 한국은행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은행이 일반적으로 금리를 설정할 때 정치인과 행정부의 이해관계와는 독립적인 재량을 보장받는 것이 거시경제 전반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더라도, 본질적으로 중앙은행도 정부 관료조직의 일부이기에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수장 임명은 정치적인 성격을 띤다. 2025년 연구에 따르면, 약 70%의 중앙은행 수장은 정부 수반이나 행정부 고위 인사의 개입을 통해 임명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중앙은행의 수장은 결국 대통령이 지목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단독으로 한국은행 총재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대통령이 단독으로 지명을 한 뒤에 상원에서 인준이 되어야 임명이 된다. 실제로 부적격한 후보자는 상원에서 기각된 사례가 있다. 그래서 미국의 연준이 한국에 비해서 조금 더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잘 마련되어 있다고 본다.
문제는 간혹 정치인들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하려고 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책임을 중앙은행에 전가하려고 한다는 모순적인 행동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는 금리 인하를 압박하거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연준 의장과 회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동시에 미국 정치인들은 연준이 2007~09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양적완화 정책을 남용하였다는 이유로 책임을 돌려왔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가 연준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해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고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서보영 美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